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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해라’로 영화 혁명 이끈 장 뤼크 고다르 천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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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해라’로 영화 혁명 이끈 장 뤼크 고다르 천상으로

입력
2022.09.13 18:52
수정
2022.09.13 20:46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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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뤼크 고다르 감독, AP 연합뉴스

장 뤼크 고다르 감독, AP 연합뉴스

영화 ‘네 멋대로 해라’(1960)와 '사랑과 경멸'(1963) 등 수많은 영화를 제작해 프랑스 '누벨바그'(Nouvelle Vagueㆍ새로운 물결)를 이끌었던 장 뤼크 고다르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92세.

13일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은 고다르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정확한 사망 시간과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고인은 스위스 홀르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고인은 193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스위스 니옹에서 유년기를 보낸 후 파리로 돌아와 소르본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20대 시절 유명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을 매개로 훗날 프랑스 주요 감독이 되는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자크 리베트 등 영화학도들과 교유하며 영화계 진출을 준비했다. 처음엔 프랑스 영화 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기고한 영화 평론으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프랑스에선 폄하되던 미국 영화의 가치를 재발견하며 새로운 프랑스 영화의 등장을 주장했다.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들고다닐 수 있는 카메라로 자유자재로 촬영하고, 기존 영화와 다른 파격적인 전개로 이야기를 펼쳐 각광을 받았다. 당시 대거 등장한 신인 감독들과 함께 누벨바그로 분류되며 20세기 후반 프랑스 영화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 됐다. 무명 배우 장 폴 벨몽도(1933~2021)는 ‘네 멋대로 해라’로 세계적 스타로 거듭났다. 좀도둑 프랑스 청년과 미국 여자 모델의 사랑과 일탈을 그린 ‘네 멋대로 해라’는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하나로 종종 호명된다. 당초 트뤼포 감독이 영화화하려 했다 포기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영화 '네 멋대로 해라'는 기존 영화 기법을 허무는 혁명적인 스타일과 전개로 개봉 당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영화 '네 멋대로 해라'는 기존 영화 기법을 허무는 혁명적인 스타일과 전개로 개봉 당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실존주의적 대사, 점프컷(장면과 장면이 급작스럽게 이어지는 편집기법), 조명을 잘 쓰지 않은 촬영 등으로 유명했다. 파격적인 영화를 만드는 만큼 급진적인 정치 사상을 곧잘 드러내곤 했다. ‘영화는 1초당 24프레임에 담긴 진실’이라는 말로 영화의 정치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작은 병정’과 ‘기관총 부대’(1963), ‘머나먼 베트남’과 ‘중국 여인’(1967) 등을 통해 알제리 독립전쟁, 베트남전 등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한때는 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을 숭배했고 문화대혁명을 열렬히 지지하기도 했다. 1968년 68운동 와중에 칸영화제가 열리자 기성세대와 기성 정치를 대변한다는 이유로 영화제 중단시위를 주도해 영화제를 중단시키기도 했다.

21세기 들어서도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 대사가 없는 시적 영화 ‘필름 소셜리즘’(2010)이 칸영화제에 초청됐고, ‘언어와의 작별’(2014)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2011년엔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스위스 자택에서 칩거했던 고인은 건강을 이유로 칸영화제와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덴마크 유명 배우 안나 카리나(1940~2019)가 첫 배우자였다. 평생 연출한 장편 극영화만 44편이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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