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맞벌이 부부 가계부 9개월 쓴 체험기
'지출 구조 파악' '미래 설계 가능' 최대 장점
매월 고통스러운 결산 통해 소비습관 다지기
편집자주
'내 돈으로 내 가족과 내가 잘 산다!' 금융·부동산부터 절약·절세까지... 복잡한 경제 쏙쏙 풀어드립니다.
[올해 1월 어느 날, 부부의 대화]
남편 : 결혼한 지 만 3년이 지났는데 어떻게 빚이 거의 그대로일 수가 있지?
아내 :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막 쓰는 것도 아니고 나름 아끼고 사는데 말이야.
남편 : 정말 이상하다. 배달음식이라도 좀 줄여볼까?
아내 : 배달음식도 그렇고, 일단 가계부라도 좀 써봐야 할까 봐.
'월급은 왜 모이지 않는가.' 세상에서 가장 궁금한 이 미스터리를 풀고자 올해 1월부터 가계부를 써봤습니다. 유튜브를 검색해 보니 가계부를 쓴 어떤 신혼부부들은 몇 년 새 수억 원을 모았다는 얘기도 있네요. 자산관리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가계부, 9개월간 직접 써보고 경험한 내용들을 공유해 보겠습니다.
부부 가계부 핵심은 '공유하기'
일단 가계부를 쓰는 방법 자체는 어렵지 않아요. 어린 시절 용돈기입장을 썼던 기억은 대부분 가지고 계시죠? 가계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핵심은 들어오고 나가는 돈을 기입하는 것이고, 나가는 돈의 횟수가 절대적으로 많으니 수입보다 지출에 더욱 신경을 쓰면 됩니다.
그다음, 가계부를 수기로 작성할지 아니면 도구의 힘을 빌릴지를 선택하면 됩니다. 최근엔 결제내역 등을 자동으로 입력해 주는 가계부 애플리케이션(앱)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수기로 작성하는 것보다 더 편하게 가계부를 기록할 수 있어요. 어떤 방식을 선택했든지 간에 금액·날짜·항목(혹은 카테고리)만 기록할 수 있다면 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부부 가계부'는 '싱글 가계부'와 조금 다릅니다. 싱글은 본인의 소비내역만 보면 되지만, 부부는 서로의 소비내역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물론 하나의 아이디를 부부가 공유하는 방법도 있지만, 아이디 공유자의 다른 정보도 함께 공개될 수 있기 때문에 불편할 수 있어요. 현재 '공유하기' 기능이 포함된 가계부는 △Buboo 부부 △공유가계부 △함쓰 등이 있어요. 기능은 모두 엇비슷하니, 사용해 보시고 본인에게 편한 가계부를 선택하면 됩니다. 참고로, 저는 'Buboo 부부' 앱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요즘 젊은 부부 사이에서 가계부 쓰기는 특별한 일이 아니에요. 뱅크샐러드는 올해 4월 '우리 집 돈 관리' 서비스를 출시했는데요, 현재 사용자의 61.6%가 '30대 부부'라고 합니다. 40대 부부(22.6%)까지 합치면 3040세대가 주 사용층인 셈이죠. 한창 돈을 모아야 할 시기에 월급은 찔끔 오르고 물가와 대출금리는 팍팍 오르니 다들 허리띠라도 바짝 졸라매고 있나 봅니다.
[부부의 사생활]
사실 '부부 가계부' 앱을 고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가계부를 쓰겠다는 부부의 결심과 합의예요. 서로의 소비내역을 100% 공유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부부 각자가 달마다 얼마를 모을지만 결정하고 각각 가계부를 쓰시면 됩니다. 아니면 부부 통장을 별도로 만들어서 생활비·관리비 등 공통 소비내역만 가계부를 작성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가계부에 정답은 없어요
이제 직접 쓴 가계부를 공유해 볼게요. 지난달엔 총 263만 원(대출이자·관리비 등 별도)을 소비했어요. 카테고리별로 보면 △식비(126만 원·48%) △의류(65만 원·25%) △경조사(33만 원·13%) △생필품(20만 원·8%) 순이고, 소비 주체로는 △공통(58%) △남편(26%) △아내(15%)입니다. 앱을 활용하면 카테고리·소비 주체별 지출내역을 몇 초 만에 확인할 수 있어요.
각 가정마다 구성원 수·소득·소비 등 조건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가계부의 정답은 없어요. '2인 가구의 식비는 얼마가 적당하다' 식의 조언도 있을 수 있겠지만, 직장 형태·맞벌이 유무·윤리적 소비 성향 등만 고려해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거든요. 어떤 표준 모델에 소비패턴을 맞추려고 집착할 경우 가계부를 쓰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일단 우리는 '가계부를 한번 써본다'는 행위에만 집중하도록 해요.
가계부 쓰니 달라진 세 가지
가계부를 쓰니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①우리 집 지출 구조를 알게 됐다는 거예요. 어쩌면 교과서 같은 교훈이지만, 실제 써보기 전과 써본 후 체감하는 내용은 전혀 달라요. 저 같은 경우 맞벌이 2인 가구이기 때문에 식비 지출이 많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거든요. 그런데 9개월간 가계부를 써보니 식비 규모에 따라 전체 지출액이 출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지출 구조를 알게 되니 ②의식적 소비생활이 가능해졌어요. 특히 '홧김소비(스트레스를 받아 홧김에 하는 소비)' 같은 비정기적 지출을 통제할 수 있게 됐어요. 물론 홧김소비 자체를 막을 순 없었어요. 하지만 한 해 또는 월별 홧김소비 규모를 설정해뒀더니 그 이상의 소비는 하지 않으려 노력하게 되더라고요. 어차피 정해진 금액을 쓴다고 생각하니 홧김소비 후 맞이하는 '현타(현실 자각 타임)'도 줄어들었죠.
③미래 설계가 가능해졌다는 것도 장점이에요. 막연하게 '몇 년 안에 얼마를 모으겠다'는 결심 대신에 가계부를 쓰면 훨씬 구체적인 고민을 할 수 있어요. 평균 월 지출액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살면 '20XX년 X월 말엔 X원을 모으겠구나'라는 예상이 가능해요. 여기서 더 발전하면 '월 지출액을 얼마씩 줄이면 얼마를 더 모을 수 있겠구나'라는 현실적인 계획도 세울 수 있죠.
달라지지 않은 점들
달라지지 않은 점도 있어요. 가계부를 쓴다고 수입이 변하진 않아요. 지출 구조 개선을 통해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는 있지만 수입 자체가 변하진 않죠. 그렇다고 '가계부 쓰기'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에요. 현실적으로 수입을 늘리기 쉽지 않은 만큼, 지출 구조조정은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재테크 방법이기 때문이죠.
가계부가 단순한 '기록'에 머물 경우 효과는 크지 않아요. 기록에 '결산'을 더했을 때, 가계부 속 숫자는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저는 한 달 간격으로 가계부를 결산하자고 목표를 세웠는데요, 사실 가계부 쓰기에서 가장 어려운 게 결산이었어요. 한 달간 성적표가 그대로 드러나니 심적으로 부담이 컸습니다. '이렇게까지 아끼고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에 관두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하지만 결산을 우회할 방법은 없었답니다. 사실 '월급은 왜 모이지 않는가'라는 미스터리의 답은 누구나 알고 있어요. 당연히 '버는 것보다 더 쓰거나, 버는 만큼 다 쓰거나'겠죠. 결산의 목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왜 그만큼 썼을까, 그게 꼭 필요했을까, 더 줄여볼 수 없을까'라는 고민을 자신에게 던지는 겁니다. 지난 9개월간 100% 만족했던 결산은 없었어요. 하지만 이걸 하지 않았다면, 또다시 반성 없는 한 해를 보내게 됐겠죠. 달라지고 싶다면, 결산을 피하지 마세요.
"신혼부부, 소득의 최소 50%를 모아라"
가계부 체험기는 이쯤에서 마치고, 남은 궁금증은 전문가에게 물어볼게요. 신혼 시절부터 가계부를 써왔다는 김진웅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의 얘기를 들어볼게요.
-신혼부부는 합산 소득의 얼마 정도를 저축해야 할까요?
"신혼부부는 본격적으로 돈을 쓰기 전까지 종잣돈을 모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기예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저축을 해야 합니다. 최소 기준은 소득의 50%입니다. 최근엔 저축 대신 주택담보대출 상환을 '강제저축' 개념으로 보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원금이 아닌 이자 상환은 원칙상 비소비성 지출입니다. 이분들은 종잣돈 대신 원리금 상환을 최우선으로 하시길 추천합니다."
-부자들을 많이 만나볼 텐데 그분들도 가계부를 쓰나요?
"솔직히 여쭤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나본 부자들, 특히 상속이 아닌 자수성가로 부자가 된 분들은 어느 시점에 이미 종잣돈을 모은 분들입니다. 종잣돈을 만들지 않고서는 부자가 될 수 없거든요."
-가계부, 꼭 써야 하나요?
"가계부를 쓰는 사람과 안 쓰는 사람은 지금 당장은 비슷해 보일 수 있어요. 그러나 시간이 5년, 10년 흘렀을 때는 아예 다릅니다. 가계부가 바람직한 소비습관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죠. 어떤 소비습관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종잣돈의 크기도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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