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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위해 바친다"... 파타고니아 창업주, 4조원 회사 '통째'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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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위해 바친다"... 파타고니아 창업주, 4조원 회사 '통째' 기부

입력
2022.09.15 20:0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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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보호 위해 할 수 있는 일 다 해야"
친환경 경영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
주한미군 출신... 억만장자 됐지만 소박한 삶

파타고니아 설립자 이본쉬나드. 게티이미지 뱅크

파타고니아 설립자 이본쉬나드. 게티이미지 뱅크


세계적인 인기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창업주 이본 쉬나드(83) 회장과 가족이 30억 달러(약 4조2,000억 원)에 달하는 회사 지분을 환경 보호를 위해 설립된 비영리재단 등에 통째로 넘긴다.

쉬나드 회장의 평생 경영 가치인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 보호를 위한 결단이다. 그는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뒤 "이제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라며 "내 삶을 올바르게 정리할 수 있게 돼 안도감이 든다"고 말했다.


회사 지분 100% 비영리 단체에 기부..."지구 살리기 위해"

1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쉬나드 회장은 파타고니아 웹사이트에 게시된 편지를 통해 그와 그의 배우자, 두 자녀가 가지고 있던 지분 100%를 환경단체와 비영리재단에 양도하는 것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전체 주식의 2%인 의결권 있는 주식은 환경 보호 등 회사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 법인 '파타고니아 퍼포스 트러스트'에 이전되고, 의결권 없는 나머지 98%의 주식은 환경 위기와 싸우고 있는 비영리재단 '홀드패스트 콜렉티브'에 넘겨진다. 매년 1억 달러(약 1,390억 원)에 달하는 파타고니아의 수익도 전액 기후변화와 환경 보호 활동에 사용된다.

쉬나드 회장은 이번 결정을 내린 후 "50년 후 지구가 번성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면 우리가 가진 자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며 "나는 이 행성(지구)을 구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 보호를 위해 4조 원이 넘는 회사 소유권을 단숨에 포기한 쉬나드 회장의 결정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산업계가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다만 평생 환경 보호를 제일의 가치로 두고 살아온 그의 행보를 볼 때 이번 결정이 어느 정도 예상됐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파타고니아와 함께 환경 보호 운동을 해온 비영리 단체 관계자인 조쉬 어윙은 "놀랍지 않다면 거짓말"이라면서도 "환경 보호를 위한 그의 전례 없는 리더십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파타고니아의 ‘Don’t Buy this Jacket(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광고. 파타고니아 홈페이지 캡처

파타고니아의 ‘Don’t Buy this Jacket(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광고. 파타고니아 홈페이지 캡처


가난한 암벽 등반가에서 글로벌 경영인으로

1938년 미국 메인주에서 태어난 쉬나드 회장은 젊은 시절 암벽 등반가로 활동했지만, 자동차에서 잠을 자고 고양이 사료로 끼니를 때우는 등 매우 가난한 삶을 살았다. 이후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 만든 장비들이 암벽 등반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파타고니아의 전신 격인 ‘쉬나드 장비’라는 회사를 설립해 등산 장비를 판매하기도 했다.

쉬나드 장비에도 그의 환경 보호 정신이 녹아 있다. 그는 암벽 등반할 때 사용하는 피톤을 주력 상품으로 만들다가 이것이 암벽을 훼손한다는 것을 깨닫고 암벽에 박을 필요가 없는 알루미늄 초크로 생산체계를 전환한다. 이런 결정은 오히려 암벽 등반인에게 호응을 얻어 그와 그의 회사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한국과의 인연도 눈길을 끈다. 그는 1960년대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시절 등산을 즐겼는데, 한국에서도 자신이 사용할 장비를 쌍림동 대장간에서 직접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쉬나드는 북한산 인수봉 바윗길 두 곳을 직접 개척하기도 했는데, 이 코스는 현재도 애용되고 있다.

쉬나드가 파타고니아를 설립한 것도 환경 보호라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캘리포니아 벤추라에 본사를 둔 파타고니아는 3년간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땅에서 수확한 100% 유기농면을 사용하거나,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 병을 재사용하여 재킷을 만들었다. 또 사료를 강제로 먹여 키운 거위의 털을 사용하지 않는 ‘트레이서블 다운(생산 과정 추적 다운)’을 제작하는 등 지속적으로 친환경적 행보를 보였다.

파타고니아는 2011년 블랙 프라이데이에 ‘Don’t Buy this Jacket(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이라는 광고 문구를 내걸기도 했다. 파타고니아 제품은 정말 필요한 사람만 구입하고 망가진 제품은 수선해서 오래 입으라는 뜻이다. 대신 평생 무료 수선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반짇고리를 나눠주는 캠페인을 벌였다. 파타고니아의 이런 친환경 행보에 소비자들은 호응했다. 친환경 재료를 사용해 가격이 비쌌지만, 파타고니아의 매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파타고니아가 노스페이스, 콜롬비아 스포츠 등과 함께 미국의 3대 아웃도어 브랜드로 성장한 배경이다.


1972년의 이본 쉬나드. 쉬나드는 젊은 시절 자신이 직접 만든 장비를 판매했다. 라이팅하우스

1972년의 이본 쉬나드. 쉬나드는 젊은 시절 자신이 직접 만든 장비를 판매했다. 라이팅하우스


소박한 억만장자..."기부가 새 자본주의에 영향 미치길"

그는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하는 억만장자 명단에도 뽑혔지만 지금도 검소한 생활을 고수하고 있다. NYT는 그가 지금도 낡은 옷을 입고, 미국에서 저가 자동차로 분류되는 스바루를 몰고 벤투라의 소박한 집에서 일상을 보낸다고 전했다. 그는 컴퓨터나 휴대폰도 소유하지 않고 있다.

미 언론들은 회사 지분 이전 과정에서도 그의 환경 보호에 대한 강한 집념이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쉬나드가 회사 지분을 정리할 뜻을 드러내자 회사 중역들이 자금을 더 모을 수 있는 매각이나 기업공개(IPO)를 권했으나 그가 단칼에 거절했다는 것이다. 통상 회사를 매각하면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는 데다가, IPO 역시 비상장 회사의 몸값을 부풀리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쉬나드는 제3자 매각이나 IPO로 외부 자금이 유입될 경우 △친환경 △자연보호 △기후 변화 대응 등 파타고니아가 지켜온 경영 가치가 흔들릴 수 있음을 우려해 회사 지분을 비상장 상태로 100%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쉬나드는 NYT와 인터뷰에서 "이번 조치가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로 귀결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에 영향을 미치기를 바란다"며 “지구를 살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많은 돈을 기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재용 기자
박세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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