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에 '보복범죄' 표현
일부 누리꾼들 "가해자 중심 용어... 부적절"
법률 용어일 뿐 반론도... 특가법상 엄중 처벌
'데이트 폭력'도 부적절... '파트너 폭력' 등 대체
"보복 범죄라고 하면 마치 피해자도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피해자는 지속적으로 스토킹 피해를 당했고 그래서 고소를 했을 뿐인데, 고소 조치가 (살인이라는) 보복에 상응하는 행위로 인식돼선 안 되지 않나."
트위터에 올라온 한 누리꾼의 게시글
신당역 여성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을 '보복 범죄'로 칭하는 표현을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스토킹 피살 사건 가해자 A씨는 피해자 B씨를 몰래 불법촬영하고, 지속적인 스토킹으로 3년 넘게 괴롭혀 왔다. 피해자는 두 차례의 고소를 통해 사법 시스템에 신변 보호와 처벌을 요청했지만, 공권력은 가해자의 살인 범죄를 막아내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와 재판 진행 과정에서 B씨에 대한 원한을 갖게 된 A씨가 보복성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며 가해자의 범행 동기를 피해자의 고소에 따른 앙갚음으로 추정했다. 그러면서 "보복 범죄라는 것이 보다 명확해지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 등을 추가할 것"이라는 입장을 덧붙였다.
여기서 경찰이 사용한 '보복 범죄'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명시돼 있는 법률용어다. 특가법상 보복 범죄에 의한 살인은 '형사사건 수사와 관련된 고소, 고발, 진술, 증언 등에 대해 보복을 할 목적으로 사람을 살해한 자'에게 적용된다. 형법상 일반 살인죄보다 형량이 더 높다. 경찰은 보복성 여부를 확인해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누리꾼들 사이에선 '보복 범죄'가 가해자 중심의 용어라는 비판도 나온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보복(報復)은 '남이 저에게 해를 준 대로, 저도 그에게 해를 줌'이라고 적혀 있다. 이에 '보복 범죄'란 단어가 피해자에게 범죄의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길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는 문제제기다.
한겨레신문도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신당역 여성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에 대해 '보복 범죄' 대신 '스토킹 범죄'라는 용어를 쓰기로 했다. 한겨레신문은 관련 공지에서 "보복 범죄라는 표현이 피해자에게도 책임을 지우는 한편, 강력범죄 전조가 되는 스토킹 행위의 심각성을 가린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며 "앞으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와 유사한 사건에 대해서 '스토킹 범죄'로 표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론도 나온다. '보복 범죄'는 가해자의 엄중한 처벌을 따지기 위한 법리용어라는 점에서 굳이 배척할 이유는 없다는 지적이다. 다만 "용어의 적절성 여부는 충분히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라며 공론화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가해자 중심의 범죄 용어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데이트 폭력'이 대표적이다. '데이트'라는 어감 자체가 폭력의 심각성을 약화시키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뉘앙스로 읽힐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데이트 폭력이란 용어는 '사랑싸움'으로 보이게 한다"면서 "데이트는 평등하게 사랑하는 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데이트 폭력' 용어를 쓰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힘이 동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데이트 폭력' 대체 용어로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Violence in intimate relationship)', '파트너 폭력(Intimate partner violence)' 등이 거론된다. 교제하던 관계에서 살인에 이르렀을 경우 '교제 살인'이라는 용어도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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