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불법 개 도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법 적용과 사실관계 파악을 소홀히 한 점이 확인됐습니다. 지난달 검찰은 도살장 주인 A씨를 벌금형에 처해달라는 약식명령을 청구(약식기소)했는데, 동물단체는 부족한 수사를 기반으로 내려진 결정인 만큼 법원에 의견서를 추가 제출해 정식 재판을 재차 촉구할 예정입니다.
지난 7월,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는 경기 수원시의 한 야산에서 불법 개 도살 현장을 적발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현장에서는 개 한 마리가 목이 매달린 채 숨져 있었으며, 다른 개 한 마리는 불에 그을린 채 죽은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또 다른 개 두 마리는 철장에 갇힌 채 이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사건을 접수한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중요한 단서가 되는 진술을 확보했음에도, 이를 그냥 흘려보냈다는 점입니다.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도살장 주인 A씨로부터 ‘유기견을 포획한 뒤 도살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받았습니다.
동그람이가 확보한 경찰 수사관과 동물자유연대 활동가의 통화 내용에 따르면 A씨는 경찰에 “유기동물을 데려와 반려동물로 키우고 있다가 형편이 안 되고, 마침 주문이 들어와 개를 도살했다”고 진술했습니다. 현행법상 유기동물을 포획해 죽이는 행위는 불법입니다.
누구든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동물에 대하여 포획하여 판매하거나 죽이는 행위, 판매하거나 죽일 목적으로 포획하는 행위 또는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동물임을 알면서도 알선·구매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유실·유기 동물
2. 피학대 동물 중 소유자를 알 수 없는 동물
-동물보호법 8조 3항
그러나 경찰은 A씨를 검찰에 송치하면서 동물보호법 8조 1항(동물 살해)만 적용했습니다. 유기견 불법 포획에 대한 혐의는 적용하지 않은 것이죠.
경찰 수사가 미진한 부분은 또 있었습니다. A씨는 범행이 적발된 도살장 외에도 개를 기르던 사육장이 따로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11마리의 개가 추가로 발견됐으며, 동물자유연대가 구조해 현재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이 개들에 대한 동물학대 혐의는 검찰 송치 과정에서 제외했습니다. 동물자유연대는 이 곳에 있는 개들 역시 도살 목적으로 사육했으며, 유기동물을 추가로 포획했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 개들에 대한 동물학대 혐의도 적용을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당시 수사를 맡은 수사관은 사실관계를 묻는 동그람이의 질문에 “유기견을 포획했다는 진술을 들은 것은 맞지만 사건 내용이 ‘도살’이라는 점에 집중해 동물보호법 8조 3항이 적용된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도살장 외의 사육장에 있는 개들에 대한 동물학대 혐의에 대해서도 “초동 수사과정에서 올라온 서류만 검토하고 현장을 찾아보지 않아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동물자유연대 조해인 법률지원센터장은 이에 대해 “적용하지 않았던 혐의가 추가로 확인된 만큼 법원은 이 사건을 정식 재판으로 회부하고, 검찰은 공소장을 변경하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일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조 센터장은 “한 사건에서 물을 수 있는 죄가 여러 개면 보통 법원은 가중처벌한다”며 “적어도 이번 사안은 약식기소로 끝낼 게 아니라 정식 재판을 통해 무거운 벌금형을 내리거나 최소한 징역형의 집행유예라도 내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조 센터장은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해 이 점을 참작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경찰은 지난해 3월, 동물학대 수사 매뉴얼을 대폭 개정한 ‘동물대상 범죄 벌칙 해설’을 일선 현장에 배포했습니다. 동물학대 수사 매뉴얼의 개정 필요성을 국정감사 자리에서 언급했던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올해 3월 확인한 바에 따르면 경찰청은 동물학대 수사와 관련한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해 일선 경찰관이 수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경찰청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부터 이 교육은 직장교육으로 채택돼 의무로 수강하도록 했다”며 “인사평가가 진행되는 10월쯤에는 수강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이런 노력이 현장에 모두 전달된 것은 아닌 듯합니다. 이번 사건을 맡은 수사관은 “경찰청 매뉴얼 대신 전임자가 넘겨준 인수인계 자료를 참고했다”며 “경찰청에서 제공하는 직장교육 역시 아직 수강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처음 실시된 만큼 직장교육이 잘 실시됐는지, 현장에서 관련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은 필요한 듯합니다.
동물자유연대는 지난달 31일 A씨에 대한 정식 재판을 요구하는 시민 1만2,000여명의 탄원서를 제출한 바 있습니다. 이들은 이번에 확인된 수사기관의 부실한 수사 내용을 지적하는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서를 추가로 법원에 제출해 정식 재판을 재차 촉구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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