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이나 발기부전, 두통, 시야장애 등이 나타나면 산부인과나 비뇨의학과, 신경과, 안과 등을 먼저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들 질환은 내분비계 이상, 즉 ‘뇌하수체(腦下垂體ㆍ골밑샘ㆍhypophysis) 질환’때문에 발생할 수 있다.
뇌하수체는 우리 몸에 중요한 5~7가지 호르몬을 분비하고 조절하는 내분비기관이다. 코 뒤쪽 바로 위 뇌의 중앙 부위(터키 안장)에 위치한다. 지름은 10㎜, 완두콩 정도의 크기다.
뇌하수체(腦下垂體)의 수(垂)는 ‘드리우다’라는 뜻으로 신경계와 내분비계를 연결하며 시상하부 아래 매달려 있는 모양을 뜻한다. ‘골밑샘’이라고도 부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뇌하수체 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모두 3만3,503명으로 2016년 2만1,846명에서 5년 만에 53.4% 늘었다. 성별로는 여성이 남성보다 2배 정도 많다.
문성대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뇌하수체는 ‘내분비계 중추’ 또는 ‘마스터 샘(Master gland)’으로 불릴 만큼 우리 몸에 중요한 호르몬을 분비하고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며 “뇌하수체 호르몬이 너무 적거나 많이 분비되면 우리 몸에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뇌하수체는 전엽(샘 뇌하수체)과 중간엽, 후엽(신경 뇌하수체)으로 구성돼 있다.
전엽에서는 크게 유즙 분비 호르몬(프로락틴), 성장 호르몬, 부신 피질 자극 호르몬, 생식선 자극 호르몬, 갑상선 자극 호르몬 등 5개 호르몬이 분비된다.
후엽에서는 항이뇨 호르몬과 옥시토신 등 2개의 호르몬이 나온다. 중간엽은 멜라닌 세포 자극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인간에서는 퇴화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뇌하수체 질환은 종양으로 인한 질환이 특히 중요하다. 뇌하수체 질환을 흔히 뇌하수체 종양으로 부르는 이유다. 종양 발생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유전자 결함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증상은 크게 비기능성 종양에 의한 증상과 호르몬 과다 분비에 의한 증상으로 나눈다. 비기능성 종양은 덩어리가 커지면서 주변 혈관, 신경, 조직을 압박해 생기는 두통ㆍ시야장애ㆍ안면 마비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이는 뇌하수체 위쪽에 시신경이 위치하고 옆으로 뇌에 혈액을 보내는 뇌 경동맥이 지나기 때문이다. 또 뇌하수체 호르몬 중 1개 혹은 그 이상이 분비되지 않으면서 무기력이나 창백, 저신장, 근육 감소, 불임이나 발기부전, 체모ㆍ음모 소실, 구토, 저혈압, 저혈당, 빈혈 등 다양한 기능 저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기능성 종양은 5가지 호르몬이 과분비돼 생기는 증상, 즉 유즙 분비종이 있으면 젖흐름증, 불임, 골다공증이 나타날 수 있고, 성장호르몬이 과분비되면 말단비대증으로 이마가 돌출되거나 거인증이 나타날 수 있다.
부신 피질 자극 호르몬이 과분비되면 낙타 등, 피부 자색 선조, 쉽게 멍이 드는 등의 쿠싱증후군이 나타난다. 드물지만 갑상선 자극 호르몬을 분비하는 종양의 경우 갑상선기능항진증 증상이, 성선 자극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면 성조숙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뇌하수체 질환이 의심되면 뇌하수체 종양 유무를 먼저 검사한다. 검사는 뇌하수체 자기공명영상(MRI), 컴퓨터단층촬영(CT), 혈액검사 등으로 이뤄진다.
MRI 검사는 뇌와 뇌하수체 주변 구조를 세부적으로 검사해 종양의 정확한 크기와 범위를 확인한다. 혈액검사는 종양에 의해 과다 분비되는 호르몬 농도를 측정함으로써 정확한 진단을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뇌하수체기능저하증이 의심되면 복합 뇌하수체 기능 검사로 하나 혹은 둘 이상의 호르몬 분비에 부족이 있는지 진단하고 부족한 호르몬이 발견되면 부족한 호르몬을 보충하는 치료를 시행한다.
뇌하수체 종양은 1차성 뇌종양 중 3번째로 발생 빈도가 높다. 뇌종양 전체의 20%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흔한 것은 유즙 분비 호르몬종이다. 여성에서는 무월경, 유즙 분비 증가, 성욕 감퇴, 불임 등이 나타나고, 남성은 여성형 유방, 성욕 감퇴, 불임 등의 증상을 보인다. 공통적으로 고혈압이나 고혈당, 갑상선기능항진증 같은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확진을 받을 때가 많다.
말단비대증이나 쿠싱병은 초기에 진단하면 수술로 완치될 확률이 80%에 이르지만 어느 정도 병이 진행된 후 병원을 찾을 때가 많아 수술로 완치하는 경우는 드물고, 수술 후 재발이 높은 편이다.
유즙 분비 선종은 약물로 치료하면 대부분 완치된다. 간혹 장기간 약물 치료를 하기도 하지만 수술하는 경우는 드물다. 다만 유즙 분비 선종도 종양이 커 출혈이나 시야장애를 동반하면 수술로 제거하기도 한다. 이때 종양을 제거하면 대부분에서 뇌하수체기능저하증이 발생하므로 평생 호르몬 보충 치료를 해야 한다.
문성대 교수는 “개두술로 뇌하수체 수술을 시행하면 뇌 실질(實質)을 다칠 위험이 있기에 코로 접근하는 방법보다 여러모로 불리하다”며 “뇌하수체 종양이 3~4㎝ 이상이면서 터키 안장 위쪽을 많이 침범할 때를 제외하면 코로 접근하는 것이 흉터도 적고 합병증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코로 접근하는 수술법을 ‘접형동 경유 뇌하수체 절제술’이라고 한다. 이 수술은 코 아랫 부분을 절개해 주변 뇌를 건드리지 않고 최단 거리로 뇌하수체에 도달해 종양을 제거한다.
뇌하수체 질환으로 수술하면 남아 있는 호르몬 양을 확인하기 위해 복합 뇌하수체 기능 검사를 받아야 한다. 수술 후 뇌하수체 MRI 검사를 받는 경우도 흔하다. 또한 정기적으로 내분비내과 전문의 진료가 필요하고, 뚜렷한 증상이 없더라도 정기검사를 통해 재발이나 뇌하수체기능저하증을 조기 진단하고 치료해야 한다.
생활하는데 별다른 제약은 없지만, 약 처방을 받았다면 임의로 약물을 끊으면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에 반드시 전문의와 상의해야 한다.
문성대 교수는 “뇌하수체 질환은 조기 진단이 가장 중요하다”며 “특히 여성의 경우 생리불순, 불임, 두통, 시야장애, 무기력 등이 있고, 남성은 2차 성징이 늦어지거나 불임, 여성형 유방이 나타나면 병원에서 상담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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