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하진 '도박중독자의 가족'
편집자주
세계를 흔든 K콘텐츠의 중심에 선 웹툰. 좋은 작품이 많다는데 무엇부터 클릭할지가 항상 고민입니다. '웹툰' 봄을 통해 흥미로운 작품들을 한국일보 독자들과 공유하겠습니다.
190조 원. 주식 열풍이 불었던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가 부동산 및 주식 투자 등을 위해 금융사에서 빌린 돈의 규모다. 최근 주가가 꺾이자 '빚투(빚내서 투자)' 실패 소식이 곳곳에서 들린다. 만약 돈을 모두 날린 내 가족이 "딱 한 번만 더"라며 돈을 빌려 달라면, 단호히 거절하고 도박 중독 상담을 받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올해 카카오웹툰에 연재된 이하진 작가의 '도박중독자의 가족'은 그러지 못했을 때 벌어지는 '지옥'을 그렸다. 작가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생생한 분투기는 어떤 공포물이나 스릴러물보다도 오싹하다. 현실감 넘치는 스토리로 6개월 만에 누적 조회수 700만 회를 넘겼고 최근 책으로도 출간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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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도박중독자의 '가족'에 초점을 맞춰 더 흥미롭다. 사채까지 끌어 투자한 아들이나 형제를 보면서도 '도박중독자'는 아니라고 믿는 보통의 가족이다. 도박중독일 수 있으니 상담을 받아보라 권하고 빚을 대신 갚아주면 안 된다고 말하는 며느리 '하진'을 향해 온 가족이 비난을 쏟아낸다. 시어머니는 "어떻게 그런 말을 해!"라며 크게 분노하고, "저거만 살라고 한다!" "집안에 여자가 잘 들어와야 하는데" 등의 날 선 말이 몇 년이 지나도 줄지 않는다. 도박중독을 질병이 아닌 윤리적 타락의 결과로 보는 한국 사회 분위기 속에서 '반듯하게' 자란 아들(혹은 형제)의 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탓이다.
작가는 이런 부정이 결국 모든 가족을 지옥으로 몰고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가족들의 기대와 달리 시동생은 이후에도 형제 명의를 도용해 투자 판돈을 마련하고 큰돈을 한 번에 벌어 보려다 부동산 사기를 당하는 등 계속 사고를 친다. 결국 어머니와 형제들의 삶까지 파탄이 난다. "한국 사람들은 가족애가 강해서 집안이 망할 때까지 계속 도와요"라는 도박심리 상담사의 대사에 가슴이 콱 막힌다.
스크롤이 멈춘 그 컷 ②
대립하는 주인공 '하진'과 시어머니는 사실 같은 증상을 앓는다. 바로 '공동 의존'. 중독자가 주식, 화투 등 도박으로만 행복을 느끼며 거기에 의존하듯, 중독자의 가족이 중독자에게 의존하는 일종의 심리적 질병이다. '중독자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전 재산을 다 내놓다 못해 동네 사람들에게 빚을 얻어가며 아들을 돕는다. 매일같이 책망 섞인 하소연을 하는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는 '하진'은 시어머니를 바꿔야 내 삶도 편해진다고 생각해 신경을 곤두세우다 불안신경증까지 앓는다.
작가는 '공동 의존' 사례자 대부분이 여자, 특히 자식을 가진 어머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남편이 도박중독인 경우는 자식을 두고 도망갈 수 없으니까 어떻게든 가족을 지켜보려는 마음이 원인일 테다. 작품 속 시어머니처럼 자식이 곧 자기 인생의 성적표와 같은 삶을 산 여성들이 많아서이기도 하다. 관련 연구를 보면 이혼에 대한 편견이 심하고 여성이 돌봄의 책임을 지는 가부장적 사회일수록 '공동 의존' 양상도 강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스크롤이 멈춘 그 컷 ③
완벽한 해결이 없는 마지막 회는 오히려 용기를 준다. 내일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우리네 삶과 닮았다. 10여 년의 세월 동안 고군분투한 주인공이 자신의 삶에 집중하라는 상담사의 조언을 되새기며 내뱉는 마지막 대사는 우리의 다짐이 된다. "언젠가 또 일이 터질지도 모르고, 내가 걸린 이 병은 평생 낫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오늘 아침 또다시 다짐한다. 오늘 하루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보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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