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최근 중국 국가박물관이 고구려와 발해를 제외한 한국사 연표를 게시하면서 ‘동북공정(東北工程)’ 움직임이 다시 주목되고 있다. 한중 수교 30주년과 중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진행된 ‘한중일 고대청동기’ 특별전에서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이 제공한 한국사연표와 달리 고구려와 발해 부분이 아예 삭제되면서다. 이는 한중 간 갈등사안으로 계속 커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고의성이 없다는 취지로 진화에 나섰지만 내용을 수정하는 대신 연표를 철거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 동북공정은 2002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역사연구 프로젝트로 2007년 종료됐다.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사의 지방정권으로 결론내렸고 한국의 강한 반발을 일으켰다. 동북공정은 2004년 8월 양국이 ‘고구려사 문제가 정치화되는 것을 방지한다’ 등 5개 양해사항을 구두로 합의해 봉합됐지만, 지금은 한복, 김치, 한글 등 우리 문화를 중국에 예속시키려는 문화약탈 형태로 진화했다. ‘역사문화대국’ 중국이 열등감을 드러내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 동북공정의 계기는 2001년 1월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이었다. 자극받은 중국은 이듬해부터 사업기간 5년, 1,500만 위안의 예산을 들인 국책사업 동북공정을 시작했다. 2003년엔 중국도 랴오닝성 환런 등의 고구려 고분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했다. 중국은 유적들의 ‘동시등재’를 줄기차게 요구했고, 결국 2004년 7월 중국과 북한에 산재한 고구려유적은 공동등재됐다.
□ 동북공정은 간도지방에 대한 영토적 집착과 관련이 깊다. 청나라가 1712년 봉금(封禁) 지역으로 정해 출입을 막았던 간도는 조선인들이 꾸준히 정착해 ‘사람이 살 수 있는 터전’으로 바꿔놓았다. 일본이 1909년 임의로 중국에 넘겨주는 ‘간도협약’을 맺으면서 영토분쟁 씨앗이 뿌려졌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간도의 조선인 이주 시기 등 연구를 강화해왔다. 국제법적으로도 우위를 점하려는 것이다. 미래의 통일한국과 동북지역에 대한 역사문화적 고리를 끊는 게 중국의 ‘핵심이익’이 되는 셈이다. 우리 대응도 업그레이드할 시점이다. 2006년 9월 고구려연구재단을 흡수통합해 출범한 동북아역사재단을 강화할 이유가 절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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