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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노동자·부자도 참여'...격화하는 이란 히잡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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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노동자·부자도 참여'...격화하는 이란 히잡 시위

입력
2022.09.2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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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역으로 번지며 "최소 50명 사망"
정부, 친정부 집회로 맞불… 강경 대응
오랜 억압·경제 파탄에 민심 폭발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에 분노한 시민들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의 도로 위로 몰려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테헤란=AP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에 분노한 시민들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의 도로 위로 몰려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테헤란=AP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은 20대 여성의 죽음이 쏘아 올린 반정부 시위가 이란을 태풍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남성은 물론 노동자, 부유층까지 가세하면서 이란 전역으로 전례 없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유혈시위가 속출하는 가운데 정부는 강경 대응으로 맞서면서 정국은 대혼란으로 빠져들고 있다.

"최소 50명 숨져"… 2009년 민주화 시위 이후 최대 위협

24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22)의 의문사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란의 31개 전체 주(州)로 번졌다고 보도했다. 히잡으로 머리를 다 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간 아미니가 지난 16일(현지시간) 숨진 후 불붙은 시위가 일주일을 지나도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전날 이란 국영TV가 밝힌 사망자는 최소 35명. 하지만 가디언은 현지 활동가를 인용해 최소 50명이 숨졌고, 더 많은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고 전했다. 미국 CNN방송은 이번 시위로 체포된 사람만 최소 1,200명에 이른다고 이란 타스민통신을 인용해 보도했다.

시위 양상은 날로 격해지고 있다. 시위대는 무력 진압에 나선 경찰을 구타하고 차에 불을 질렀다. 이란 제2도시 마슈하드에서는 1979년 이슬람혁명의 상징인 동상이 불타오르기도 했다. 신정국가인 이란에서 '신의 대리자'로 추앙받는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생가가 있는 마슈하드는 보수세력의 주요 거점인 만큼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장면"이다.

이슬람 독재 정권이 "13년 만에 가장 심각한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2009년 이란에서 일어난 대규모 민주화 시위인 '녹색운동' 이후 정권을 향한 최대 위협이라는 얘기다. 이란 인터내셔널 방송의 뉴스 진행자인 시마 사베드는 "현재 시위가 지난 2009년 녹색운동과의 주요한 차이는 이제 사람들이 맞서 싸우고 있다는 것"이라며 "그들은 잔혹한 정권이 두렵지 않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아미니의 죽음에서 촉발한 시위는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하메네이(사진)와 신정통치를 겨냥하면서 정권 퇴진 운동으로 나아가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아미니의 죽음에서 촉발한 시위는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하메네이(사진)와 신정통치를 겨냥하면서 정권 퇴진 운동으로 나아가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더는 잃을 것 없다" 각계각층 분노 폭발

서방의 주요 외신은 이번 시위가 규모와 성격 면에서 앞선 시위들과 다르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시위는 아미니의 죽음에서 촉발됐지만, 이들의 구호는 더 많은 권리와 자유에 대한 요구로 바뀌었다. 시위 양상이 점차 정권 퇴진 운동으로 나아간다는 얘기다. 특히 시위의 중심에 선 젊은 층은 그 어느 때보다 대담하다.

미 뉴욕타임스는 파탄 난 경제와 암울한 전망 속에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이란 청년들이 아미니의 죽음을 계기로 들고 일어났다고 진단했다. 국제위기그룹의 알리 바에즈 이란 책임자는 "젊은 세대가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잃을 게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이라며 "지도부가 계속해서 개혁을 저지함으로써 사람들이 이 시스템으로 개혁할 수 있다는 것을 더는 믿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슬람혁명 이후 처음으로 테헤란 북부 고층 아파트에 사는 부유층부터 남부 테헤란의 시장 상인 등 노동계급, 쿠르드족과 투르크족 등 소수민족까지 계층과 지역, 민족을 망라한 각계각층이 동참하고 있는 것도 이번 시위의 폭발력을 키우고 있다. 여성들뿐 아니라 남성들도 히잡 강제 착용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23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반정부 시위에 맞선 친정부 집회가 열리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반정부 시위에 맞선 친정부 집회가 열리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강경 대응 나선 정부, 친정부 시위로 맞불

물론 이란 정부는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국민 안위가 위태로워지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국제사회서 이란 정부를 규탄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오히려 이를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 활용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일부 국가들이 이란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면서 "외부 세력의 개입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23일에는 수도 테헤란 등에서 시위대를 규탄하는 친정부 집회가 열리면서 내부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친정부 시위대는 이란 국기를 흔들며 "쿠란(이슬람 경전)을 위반한 자들은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란 정부는 이날 집회는 정부 개입 없이 자발적으로 조직됐다고 주장하면서 이들이 이슬람공화국의 힘을 보여줬다고 지지를 표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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