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자 정보 전산화 안 된 허점 악용
4급 때부터 의료비 지급 보류 업무 맡아
복지부, 2주간 특별감사 진행
국민건강보험공단 채권 담당 직원의 46억 원 횡령 사건은 채권자에게 돈을 보내는 전 과정을 직원 스스로 처리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송금 과정에 문제가 있는지 한 번 더 거를 시스템이 없었기에 횡령을 하고도 6개월간 숨길 수 있었다. 직원의 '셀프 승인·송금'이 불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건보공단에 따르면 횡령한 직원은 채권관리실에서 근무하는 팀장(3급 상당) 최모씨로 해당 업무의 '전결권자'였다. 채권자 송금에 대한 최종 승인 권한이 최씨에게 있었다.
최씨는 올해 4~7월에 1억 원, 이달 16일과 21일에 각각 3억 원, 42억 원 등 세 차례에 걸쳐 46억 원(추정치)을 빼돌렸다. 그는 요양기관에 지급될 의료보험비 중 지급이 보류된 돈들이 관리가 잘 안 된다는 허점을 악용했다. 요양기관이 공단에 청구한 의료보험비가 거짓 청구로 의심되면 지급이 보류되고 압류 조치에 들어간다. 이후 추후 절차를 거친 뒤 요양기관의 채권자에게 돈을 지급한다.
그러나 채권자 관련 개인정보는 전산망에 등록되지 않아 별도로 파악한 뒤 지급한다. 일종의 수작업을 해야 하는 셈인데, 최씨는 이 점을 악용한 것이다. 채권자 이름과 송금하는 계좌명이 달랐으니 바로 문제가 드러났어야 하지만, 최씨는 전결권자였기에 들키지 않고 자신의 계좌로 셀프 송금할 수 있었다.
채권자 정보 전산화·교차결재 얘기 나오나 "쉽지 않다"
또 최씨는 3급 승진 전 4급이었을 때 의료기관에 대한 지급 보류 여부를 심사·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즉 거짓 청구 시 지급 보류 과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에 돈을 빼돌릴 수 있었다. 최씨가 횡령한 금액은 공단 내부에서 일어난 범죄 중 가장 큰 규모다. 최씨는 4~7월을 일종의 테스트 기간으로 삼고 1억 원을 입금했는데 들키지 않자 이달 들어 40억 원이 넘는 돈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최씨는 현재 해외에 체류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일각에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채권자 정보를 전산화하고, 송금 업무는 교차승인으로 여러 번 검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채권자 정보가 전산망을 통해 관리되면 입금자가 실제 본인이 맞는지 빠르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차승인으로 바뀌면 최씨처럼 셀프 승인하는 일도 사전에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진료비 지급 업무 특성을 고려하면 쉽지 않다는 게 건보공단의 설명이다. 공단 관계자는 "채권자도 마찬가지지만 진료비 지급 대상과 환경이 실시간으로 바뀌기 때문에 전산화 작업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할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이날부터 10월 7일까지 2주간 공단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하고 최대한 신속하게 후속 조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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