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8 에스토니아호 침몰
에스토니아 국적 여객선 ‘MS에스토니아호’가 1994년 9월 28일 새벽 핀란드 우토 섬 인근 발트해에 침몰, 승선자 989명(승객 803명) 중 852명이 숨졌다. 비(非)전시 유럽 해역 역대 최악의 해난사고였다. 배는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발트해는 하루 중 어느 때든 평균 2,000척 이상의 선박이 떠 있는, 유럽에서 가장 분주한 바다다. 그래서 선박 좌초 등 비상 사태가 생겨도 국제해난구조협약에 따라 인근 선박이 출동해 대형 인명 참사로 이어지는 예가 드물었다. 하지만 에스토니아호는 오전 1시 22분 첫 구조 신호를 발신한 뒤 불과 30분 만에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선체에서 탈출한 이들 다수는 저체온증으로 숨졌고, 구조된 사람은 138명(1명은 병원에서 사망). 650여 명은 선체를 빠져나오지도 못한 것으로 추정됐다.
당일 기상은 파도와 바람이 거세긴 했지만, 현장 구조대는 전형적인 가을 폭풍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승객과 화물이 가득 실린 데다 적재 균형이 좋지 않아 출발 시점부터 배가 우현 쪽으로 약간 기울어 있었다는 증언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사고 원인은 아니었다. 1997년 관련국 합동 조사결과 사고 주원인은 선수부 잠금장치 파손으로 밝혀졌다. 그 때문에 경사로 일부가 열린 채 항해했고, 거친 파도에 해수가 급격히 유입되면서 문이 부서졌다는 것이었다.
유족은 시신 수습과 사고원인 재조사를 위해 선체 인양, 육지 견인을 요구했지만 허사였다. 배는 수심 74~85m 해역에 수장됐고, 주변국은 사고 해역을 묘역에 준하는 ‘성역’으로 지정, 다이버 등의 접근을 금지했다.
2020년 디스커버리 채널과 협업한 스웨덴 수중 촬영팀이 사고 선박을 촬영, 선체에 직경 4m짜리 등 구멍 2개가 뚫린 사실을 확인했다. 의도적 폭파설, 잠수함 충돌설, 군사장비 선적설 등 의혹과 음모론이 이어졌다. 스웨덴 정부는 최근 사고 원인 재조사 방침을 밝혔고, 금지해역에 접근한 촬영팀은 2심 재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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