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쓰레記]
냉매, 폐유부터 유리, 플라스틱, 가죽까지
전기차 폐배터리·고철은 '귀한 몸'
"EPR 제도에 자동차 포함돼야 탄소배출↓"
편집자주
우리는 하루에 약 1㎏에 달하는 쓰레기를 버립니다. 분리배출을 잘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쓰레기통에 넣는다고 쓰레기가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니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버리는 폐기물은 어떤 경로로 처리되고, 또 어떻게 재활용될까요. 쓰레기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흠이라도 날까 애지중지하던 첫 차도, 큰마음 먹고 질렀던 외제차도 언젠간 떠나보낼 때가 옵니다. 사고가 나서 망가지기도 하고, 너무 오래 사용한 나머지 제 기능을 못하기도 하니까요. 올해 여름처럼 예기치 못한 수해가 발생했을 땐 한꺼번에 수천 대에 달하는 차가 폐차 대상이 되죠.
매년 버려지는 약 90만 대의 자동차들이 처음 향하는 곳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자동차 해체재활용업체(폐차장)입니다. 오토바이부터 덤프트럭까지 도로를 굴러다니던 모든 차량이 마지막에 모이는 장소이자, 알뜰살뜰 재활용으로 다시 태어나는 시작점이죠. '재활용률 95%'라는 꿈의 숫자를 현실화하고 있는 폐차 과정을 따라가 볼까요.
가스·액체부터 유리·플라스틱·고철까지... 버릴 것 하나 없는 '폐차'
수만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자동차는 재활용 과정에선 사실상 '노다지'입니다. 엔진이나 배터리와 같은 부품부터 전선 하나, 심지어 남아 있던 기름 한 방울까지 다시 살릴 수 있거든요.
폐차 차량에서 가장 먼저 빼내는 것은 에어컨 냉매 가스입니다. 냉매는 적은 양으로도 지구온난화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주의해서 처리해야 합니다. 통상 차량 한 대에 들어가는 냉매 가스 용량은 중형차 기준 800~1,000g가량 되는데요, 이 정도 가스가 공기 중으로 유출될 경우 이산화탄소 1톤 이상을 배출하는 효과를 낳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폐냉매는 특수 업체를 통해 소각 처리해야 합니다.
이후 폐유, 부동액 등 액체류를 제거합니다. 폐유 또한 처리 과정에서 무단으로 땅에 버리거나 물에 씻겨 하천 등으로 흘러 들어갈 경우 심각한 오염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거든요. 이렇게 모인 폐유는 간단한 정제 과정을 거치면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정제된 휘발유·경유 형태였기 때문에 어렵지 않죠.
이제 해체 기술자들이 투입됩니다. 시트를 빼내 가죽을 벗겨 내고, 타이어와 유리를 빼낸 뒤 차 안 곳곳에 숨겨진 플라스틱을 찾아냅니다. 자동차에서 나온 상태 좋은 가죽시트와 안전벨트, 에어백은 업사이클 패션 업체를 거쳐 가방과 지갑, 액세서리로 재탄생하기도 합니다. 폐유리는 다시 유리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페인트 재료나 아스팔트 골재 등 건축자재로도 활용됩니다. 해체 과정에서 나온 '멀쩡한 부품'들은 깨끗이 닦고 포장해 중고 부품시장에 나오는데요, 여기선 범퍼나 문짝부터 조그만 센서 단위 하나까지 구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셈이죠.
전기차 폐배터리, 고철... 전 세계가 벌이는 자원 전쟁
마지막 단계는 자동차의 '심장', 엔진입니다. 엔진은 기능이 남아 있는 경우 주로 수출됩니다. 해외에선 배나 오토바이를 만드는 데도 사용되고, 물을 끌어올리는 양수기에까지 사용되거든요. 만약 엔진으로서 기능할 수 없는 수준일 경우 해체해 고철 종류별로 재활용됩니다. 엔진 안에는 구리와 알루미늄 등 다양한 금속 재료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죠.
최근에는 전기차가 늘면서 엔진 대신 배터리가 중요한 자원이 되고 있습니다. 폐배터리는 성능평가를 거쳐 재사용과 재활용으로 구분되는데요. 배터리 효율이 충분히 남아 있는 경우엔 셀로 분리해 파워뱅크나 에너지저장장치(ESS)로 만들어 쓰고, 다시 쓸 수 없는 상태라면 분해해 망간과 니켈 등 값비싼 원자재를 뽑아내 재활용합니다. 자원이 곧 힘이 된 시대,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은 현재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모두 뛰어들고 있을 정도로 유망한 산업이 되고 있죠.
다 떼어 내고 마지막으로 남은 고철은 납작하게 누른 다음 제철소로 보내집니다. 전기로에서 녹이고 불순물을 제거하면 다시 고품질 철강이 되거든요. 최근 고철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중국 등 일부 국가는 고철 수출을 아예 금지했고, 일부 기업은 웃돈을 주면서 고철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철광석을 녹여 만드는 것보다 고철을 녹이는 게 시간과 비용 면에서 훨씬 효율적인 데다 탄소배출도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거든요. 철강업계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고철 투입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고, 이에 폐차에서 나온 고철은 소중한 자원이 됩니다.
95%도 부족하다... 99% 재활용을 향해
이렇게 최대한 '정석 분리'를 해낸 뒤 매립지로 가는 것은 전체 차량 무게의 5% 남짓한 쓰레기뿐입니다. 이마저도 최근에는 기술 발전과 규제 개선으로 재활용의 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폐플라스틱을 높은 온도로 가열해 기름과 가스 등으로 분해하는 방식의 '열분해유'인데요, 올해 환경부는 폐기물관리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열분해유를 석유화학 공정 원료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자동차 재활용률을 95%가 아닌 97~99%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 셈입니다.
다만 문제는 폐차 과정을 친환경적으로 이행하는지 체계적으로 관리·감독하는 곳이 사실상 없다 보니, 영세하거나 오래된 업체들은 재활용률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점 입니다. 냉매나 폐유를 무단 방출하기도 하고, 내부 부품을 제대로 탈거하지 않은 채 압착해 고철 업체에 넘겨 버리거나 유리·플라스틱을 모두 태워 버리기도 하죠.
이를 체계화하기 위해 2011년부터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제도에 자동차를 포함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었으나, 몇 번의 부침 끝에 법안은 사실상 표류 상태입니다. 업계에선 답답함을 표하고 있습니다. 10여 년간 자동차 해체재활용업의 '그린뉴딜'을 주장해온 최호 동강그린모터스 대표는 "EPR 제도가 도입되면 대기업 관리 아래 폐차 과정이 표준화되고, 재활용률이 올라가면서 탄소배출도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재활용률을 높일수록 업계는 물론, 환경과 국가, 국민들에게도 이득이 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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