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속어’ ‘조문 불발’로 얼룩진 해외 순방
용산ㆍ내각 등 국정 전반 느슨하다는 지적
흔들리는 대통령 리더십부터 바로 세워야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다녀오면 지지율이 5% 이상 올랐던 게 과거 관례다. 국익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진영을 떠나 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3개국 순방은 이례적이다. 비속어 논란, 저자세 외교, 조문 포기 등 논란을 양산하더니 지지율도 덩달아 떨어졌다. 지난 6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방문 때도 수행원 논란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했다.
기이한 양상은 해외 순방 때만은 아니다. 모든 정권에서 취임 4개월 된 대통령의 행보에는 상당한 무게가 실린다. 말 한 마디와 행적이 크게 보도되고, 화제가 된다. 그러나 요즘 윤 대통령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경제와 민생 관련 현장을 자주 찾아 발언을 쏟아내지만 그리 큰 반향이 없다. 손안의 모래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실행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모습이다.
주변에 국정 전반에 걸쳐 꽉 짜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최근 몇 가지 논란만 봐도 그렇다. 영빈관 신축 문제는 그야말로 느닷없다. 언제, 누가, 어떤 경위로 추진했다가 어떻게 철회됐는지 오리무중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맥락도 없고 혼란만 커진다. 국무총리는 궁금증을 풀어주기는커녕 “신문 보고 알았다”는 말만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관가 분위기도 전반적으로 느슨한 모습이다. 정권 초라 한창 열정이 넘칠 때인데 뭔가 해보겠다는 자세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 터진 대표적인 사례가 인플레감축법 파동이다. 법안이 발의된 게 1년 전인데 손을 놓은 것도 문제지만 법안의 의회 통과 직전 한국을 찾은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을 홀대한 것은 돌이켜보면 기막힌 일이다. 대통령에게 펠로시 의장을 반드시 만나 우리 입장을 설명해야 한다고 건의한 관료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대통령실에선 일은 열심히 하지만 홍보 기능에 문제가 있다며 책임자를 바꿨지만 그게 원인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과 정부가 지향하는 국정 방향이 분명하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다. 총을 마구 쏴 대지만 과녁이 명확하지 않아 빗겨가는 이치와 같다.
요즘은 듣기도 어렵지만 공정과 상식은 그 자체가 정부의 목표가 될 순 없고,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때는 ‘선진화를 통한 일류국가’를 국정목표로 제시했다가 광우병 사태 후 ‘중도실용’으로 전환했다. 늦었지만 아직 임기 초반이니 집권세력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타깃이 필요하다.
국정 운영이 탄탄해지려면 무엇보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우선돼야 한다. 국가지도자의 리더십 원천은 진지하고 열린 자세다. 윤 대통령의 태도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진솔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준다. 해외 순방 후 첫 출근길 문답에서 ‘비속어’ 논란에 "사실과 다른 보도"라는 답변은 본질을 한참 벗어난 것이다. 여당 분란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하고 야당 대표 기소엔 "민생에 전념하느라 보고받지 못했다"고 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신뢰도가 이명박 전 대통령 임기말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전보다 낮게 나왔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다수 국민이 윤 대통령의 언행을 신실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과 정부가 뭔가를 열심히 해보려고 해도 국민은 심드렁하거나 냉소적으로 되기 마련이다.
누구보다 대통령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 민주주의 이론의 대가 로버트 달은 “대통령 선거에서 이겼다고 모든 것이 그에게 위임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대중의 지지를 잃은 대통령은 말에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대통령이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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