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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키운 주범은 '군사정권'

입력
2022.09.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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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꺼진 홍등, 그들만의 돈잔치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태동부터 쇠락까지
6·25전쟁 후 미군 주둔, 달러벌이 정권 묵인
10년 전에도 폐쇄 논의, 지주 등 집단 저항
新안산선 등 '황금 입지' 부각, 재개발 속도

편집자주

밤이 되면 홍등(紅燈)을 환히 밝힌 채 욕망을 자극했던 서울의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 영등포 수도골목. 재개발 열풍이 불어닥친 이곳도 몇 년 뒤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수십 년간 유지된 ‘성매매 온상’ 꼬리표는 사실 국가가 방조한 것이었다. 국가는 집결지 땅 일부를 제공했고, 불법에 눈 감은 사이 업주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1950년대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회색 네모로 표시된 집결지 왼쪽으로 미군기지 캠프 로버츠가 보인다. 다시함께상담센터 제공

1950년대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회색 네모로 표시된 집결지 왼쪽으로 미군기지 캠프 로버츠가 보인다. 다시함께상담센터 제공

서울 영등포 성(性)매매 집결지는 6ㆍ25전쟁이 끝난 뒤 캠프 스페이스나 캠프 로버트 등 인근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장됐다. 당시엔 소위 ‘펨푸(호객꾼)’가 쪽방으로 성 구매자를 데려가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음지에 있던 성매매를 양지로 끌어낸 건 박정희 정부였다. 단속은커녕 1962년 “윤락녀의 자립 갱생” “외국 군인 주둔으로부터 발생하는 국내 특수사정을 해결하는 방편” 등을 앞세워 영등포를 포함한 104곳을 성매매 허용 특정구역으로 지정했다. 이렇게라도 달러를 벌겠다는 심산이었다. 영등포에 ‘사창도시’라는 오명이 붙은 것도 이 즈음이다. 1965년 서울시 시정개요를 보면, 영등포(365명)와 대방(208명), 당산(94명) 등에서 667명의 성매매 여성이 일했다.

2011년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앞에서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이 대책 없는 업소 폐쇄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1년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앞에서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이 대책 없는 업소 폐쇄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0년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는 다시 한번 큰 변화를 맞는다. 한 해 전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타국에 군사적 개입을 피한다’는 닉슨독트린을 발표하면서 영등포 주둔 미군기지가 철수한 것. 기지 자리에 공장들이 들어서자 집결지 주요 고객도 구로공단 등에 직장을 구하러 상경한 청년들로 대체됐다.

전두환 정부는 한 술 더 떠 1980년대 초 이곳을 ‘윤락여성집중존치구역’으로 설정했다. 사실상 단속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2년 뒤엔 야간통행금지까지 해제됐다. 영업시간이 24시간 체제로 바뀌자, 성매매 종사자들도 밤과 낮 2개조로 나뉘어 일했다. 정부는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6년엔 미관상 이유로 성매매 집결지 시설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통창으로 대표되는 ‘유리방’이 본격 등장한 것도 이 때다.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뒤로 보이는 대형 백화점과 종합 쇼핑몰.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뒤로 보이는 대형 백화점과 종합 쇼핑몰.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등포 집결지는 1990년대 들어 도시 개발과 함께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92년 영등포와 여의도를 잇는 고가도로가 만들어졌을 때 공사 구간에 포함된 쪽방, 여인숙 등이 대거 헐렸다. 2011년 대형 복합쇼핑몰까지 입점하면서 집결지 폐쇄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한층 커졌다. 그러나 당시 성매매 여성과 포주, 건물주들이 거리로 나와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인 탓에 집결지를 없애려는 시민사회의 노력은 무산됐다.

재개발 논의는 2, 3년 전부터 다시 불붙었다. 10년 전과 달리 집단 저항도 없었다. 지주(地主)들이 재개발에 따른 수익을 극대화할 적기라고 판단한 영향이 컸다. 영등포역 지하에 서울~수도권을 잇는 신안산선 환승역이 생기고, 인근에 제2의 세종문화회관도 신축되는 등 한마디로 ‘돈 되는 땅’이 된 것이다. 2028년이면 높이 150m, 최고 44층 아파트와 주상복합 6개 동 1,500가구가 들어선다.

김도형 기자
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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