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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노동자 지워진 카타르 월드컵, 욕하면서 볼 것이다

입력
2022.10.01 09:30
수정
2022.10.01 13:58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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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최초 겨울 월드컵, 소외되고 산화된 약자들

편집자주

강소희 작가, 서효인 시인이 스포츠로 풀어내는 세상 이야기. 스포츠에 열광하는 두 필자의 시점에서 이 시대의 스포츠를 응원하고 지적합니다.

알리 카리미가 히잡 미착용 의문사 피해자인 마흐사 아미니를 추모하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최근 올렸다. 이란의 축구 영웅인 그는 정부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카리미 SNS 캡처

알리 카리미가 히잡 미착용 의문사 피해자인 마흐사 아미니를 추모하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최근 올렸다. 이란의 축구 영웅인 그는 정부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카리미 SNS 캡처


히잡 쓰지 않은 뒤 '의문사' 여성 추모한 이란 축구 영웅

이란의 축구 영웅 알리 카리미는 최근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국에 의해 구금됐다 의문사를 당한 여성을 추모하고 반정부 시위를 독려하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2004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고 2005년에는 독일 분데스리가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 영입되어 우승에 일조하기도 했던 전설적 존재이기에 그의 발언은 영향력이 컸다. 종교적 율법으로 국가를 운영하며 부패와 정치 탄압을 일삼은 이란 지도부 퇴진 운동이 그로 인해 더욱 불붙을지 두고 볼 일이다. 알리 카리미는 이전에도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높인 적이 많다. 이란은 여성의 축구장 출입이 금지된 나라 중 하나인데 카리미는 이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아직도 이란은 여성의 축구장 출입을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며 이는 사우디 등 중동의 다른 국가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때로 종교에서 비롯된 율법은 시대에 맞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종교가 사회 체계의 근간이 될 때 고통받는 것은 여성, 성소수자, 이민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다.

이천수와 몸싸움하는 알리 카리미(오른쪽) 사진은 2016년 테헤란 아자디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이란 축구 대표팀 경기. 테헤란=연합뉴스

이천수와 몸싸움하는 알리 카리미(오른쪽) 사진은 2016년 테헤란 아자디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이란 축구 대표팀 경기. 테헤란=연합뉴스


성폭행 고소했더니 혼외정사 혐의로 되레 기소

비슷한 이유로 최초의 겨울 월드컵으로 열릴 예정인 2022 카타르 월드컵에도 여러 논란이 있다. 2022년 2월 멕시코 출신의 여성이 월드컵조직위원회에 합류하여 카타르 현지에서 근무 중 동료에게 성폭행당한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는 폭행의 흔적을 촬영해 기록을 남기고 진단서까지 첨부해 현지 경찰에 신고했지만, 결과는 황당하고 참담할 뿐이었다. 카타르 수사당국은 “연인 사이였다”는 가해자 진술에 의지해 무죄를 선고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혼외정사’라는 혐의로 기소했다. 카타르에서 혼외정사는 태형 100대, 징역 7년의 중범죄라고 한다. 성폭행을 다루는 카타르의 법도, 여성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버리는 수사의 과정도 현대 국가의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카타르는 주권국가라는 이름으로 이슬람 율법에 따른 법체계인 샤리아법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법은 세계인의 축제이자 세상에서 가장 큰 이벤트라는 월드컵 기간에도 적용된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중 하나인 루사일 스타디움. 카타르 수도 도하를 중심으로 인근 5개 도시 8개 경기장에서 대회가 진행된다. 경기장 건설에 180만 명의 인부가 투입됐다. 이 중 대부분은 외국인들로 공사 중 6,000명 이상의 이주 노동자가 숨졌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이 올 초 보도했다. 카타르 월드컵 조직위원회 제공

2022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중 하나인 루사일 스타디움. 카타르 수도 도하를 중심으로 인근 5개 도시 8개 경기장에서 대회가 진행된다. 경기장 건설에 180만 명의 인부가 투입됐다. 이 중 대부분은 외국인들로 공사 중 6,000명 이상의 이주 노동자가 숨졌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이 올 초 보도했다. 카타르 월드컵 조직위원회 제공


'피'로 얼룩진 최초의 기록

카타르 월드컵에서 팬들은 물론이고 경기를 직접 뛰는 선수까지 돼지고기류는 먹을 수 없다. 맥주 등의 주류는 지정된 장소에서만 마실 수 있다. 혼외정사와 동성애는 금지된다. 문화적 차이로 인정할 수 있는 부분과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내용이 혼재돼 있지만 확실한 건 축구라는 공통의 언어로 즐기던 자유가 제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월드컵을 준비하며 희생된 사람들의 생명일지도 모른다. 중동의 여름 기후에서 축구를 할 수는 없는 일이라 이번 월드컵은 사상 최초로 겨울에 개최되는데 사실 카타르 측에서는 첨단 기술을 동원해 여름에도 충분히 대회를 진행할 수 있음을 강조해 개최권을 따낸 바 있다. 겨울에 열리는 경기장 건설 등 대회 준비는 사계절 내내 계속되었는데,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과 국내 이주인권단체들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수천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공사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풍족한 오일머니로 건설된 경기장은 멋진 외관과 첨단 기술력을 자랑하겠지만 그 안에 사람들의 피가 있는 것이다. 이 피를 그들의 율법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FIFA 홈페이지에 올라온 '2022 카타르 올림픽' 홍보 문구. FIFA 홈페이지 캡처

FIFA 홈페이지에 올라온 '2022 카타르 올림픽' 홍보 문구. FIFA 홈페이지 캡처

이와 같은 갖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이 열리는 동안 우리는 TV 앞에 앉아 축구 강국의 견실한 경기력과 축구 스타의 화려한 플레이를 즐길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번에도 본선에 진출해 같은 H조의 상대국인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과 일전을 앞두고 있다. 2022년의 성과와 그간 유럽 축구에 진출한 일부 스타플레이어 덕분에 팬들의 눈높이는 올라갔다고 하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월드컵 진출국 중에서 약체에 속한다. 원정 월드컵에서 토너먼트에 진출했던 적은 박지성이 활약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가 유일하고, 다른 대회에서는 그저 1승이 귀했다. 그 1승에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독일을 상대로 한 승리가 있다는 것으로 우리는 축구의 묘미와 짜릿함을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다. ‘이래서 축구를 보는 거구나’ ‘이래서 월드컵이 재미있는 거구나’. 그래서 축구는 도저히 불매할 수 없는 매력적 상품인 것이다. 목도할 수 없는 여러 하자에도 불구하고, 욕하면서 볼 것이다 축구를.


월드컵보다 아시안컵의 재미가 더한 이유

월드컵이 끝나면 얼마 있지 않아 아시안컵이 열린다. 사실 국가대표팀 팬에게 축구 보는 재미는 아시안컵이 더할지도 모른다. 우리보다 어쨌든 강한 상대를 만나 바짝 긴장한 상태에서 마음 무겁게 내려앉아 수비하다, 역습으로 기회를 잡았으나 결정력 부재로 찬스를 놓치고, 수비에서 집중력 부족으로 결국 골을 얻어맞아 패배하는 공식을 아시안컵에서는 조금 덜 봐도 된다.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는 누가 뭐래도 축구 강국이고 아시안컵에서의 우승 가능성은 월드컵보다 수갑절은 열려 있다. 1960년대 아시안컵 초창기에 우승하고 이제껏 4강 언저리의 성적을 거둔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지만, 어쨌든 우승할 수 있다. 이란이나 일본, 사우디를 만나 치고받는 축구를 할 수 있다. 포르투갈 같은 나라가 우리에게 하듯이 가둬 놓고 공격 축구를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월드컵에서의 그 처절함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혹시나 우승하면 월드컵을 앞두고 컨페더레이션스컵이라 불리는 대륙 간 대회에 나갈 수 있다. 아시안 챔피언의 자격으로.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말이다.

2023 AFC 아시안컵 유치 실사단이 최근 수원월드컵경기장을 둘러보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2023 AFC 아시안컵 유치 실사단이 최근 수원월드컵경기장을 둘러보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중국이 포기한 2023 아시안컵, 한국 개최를 꿈꾸며

2023년 열릴 예정인 다음 아시안컵은 그러나 개최국과 개최 시기가 정해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원래 개최국이었던 중국이 코로나 확산을 이유로 개최권을 반납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개최국으로 물망에 오른 국가는 대한민국과 카타르다. 만일 카타르가 아시안컵까지 개최하면 2022년 월드컵에 이어 두 번 연속 메이저 축구 대회를 개최하는 셈이 된다. 카타르는 월드컵을 준비하려 지어 놓은 최신 구장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과 아시아 축구 연맹을 장악한 오일 머니로 아시안컵 개최에 접근하는 듯하다. 월드컵을 여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불거졌으나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를 용인했다. FIFA가 용인했는데 AFC가 용인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아시안컵을 개최하면, 개최 시기를 겨울로 옮길 필요가 없어 유럽 리그와 겹치지 않고, 중동 개최에 치우친 아시아 축구 이벤트의 균형감을 찾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적어도 명시된 차별은 없는 대회를 치를 수 있다.

아시안컵 개최는 축구팬에게 보다 남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어쩌면 손흥민과 김민재, 이강인이 마지막으로 함께 뛰는 메이저대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승할 수 있는 기회이며 홈팀이라면 그 확률은 더 높아질 것이다. 국제 축구 대회에서 대한민국의 우승, 그거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최근의 우승은 아시안게임이 다인 걸 생각해보라. 아시안컵을 개최해 4강에서 일본을 이기고 결승에서 이란을 만나는 상상을 해본다. 사실 아시아 축구에서 우리의 진정한 라이벌은 이란일지도 모른다. 통산 전적에서 열세에 있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우리에게 치욕을 안겼다. 1996년 아시안컵 8강에서 우리는 이란에 무려 2대 6으로 졌는데 이 경기에서 이란 축구의 또 다른 영웅 알리 다에이에게만 네 골을 허용했다. 2004년 아시안컵 8강에서는 앞서 말한 알리 카리미가 한국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작성했고 결과는 3대 4 대한민국의 패배였다. 이란에만 결정적 패배를 당한 것은 아니어서 한국은 이제까지 아시안컵에서 준우승만 네 차례였고, 최다 4강 진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건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결국 우승이다. 그리고 이번이 우승의 적기이다.

2023 아시안컵 개최지는 10월 17일에 정해진다. 많은 기대와 열망이 모인다. 혹 우리나라에서 아시안컵이 개최되지 못하더라도 그곳 경기장에서 여성과 소수자가 편하게 축구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향후 이란이 아시안컵이나 월드컵을 개최할 때 거기에 히잡을 벗은 여성이 관중으로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당장 그렇지 못한다면 그나마 우리가 개최국에 알맞다. 2023년에 축구 보러 가고 싶다. 이란과 하는 토너먼트 경기에서 손흥민의 골을 직관하러.

서효인 시인 · 문학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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