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청정국 2016년 박탈…비대면 거래 활성화
하수처리장 잔여물 역산 1000명당 필로폰 23㎎
단속 컨트롤타워 필요, 예방 교육 전문화해야
유명 작곡가 돈 스파이크가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국내 마약 사범이 급증하며 한국이 '마약 신흥시장'으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10~20대 초범이 급증하고 있어 단속뿐 아니라 마약관련 예방교육, 재활·치료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약 청정국(Drug Free Country). 인구 10만 명당 마약류 사범이 20명 미만일 때 국제연합(UN)의 청정국 지정 기준이다. 마약 청정국이라 자부했던 한국은 2016년 이 기준을 넘어서 더 이상 청정국이 아니다.
국내 마약 왜 급증했나 봤더니...미국 가격 10배
2일 대검찰청의 '2021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16년 1만4,214명이 국내 수사기관에 의해 마약류 사범으로 적발됐다. 이후 연간 1만2,000여 명~1만6,000여 명 선을 오갔던 마약사범 규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을 기점으로 1만8,050명(2020년)으로 늘었다. 올 상반기 검거된 국내 마약류 사범만 8,575명. 하루 평균 30명꼴로 마약 범죄 전과자가 생겨나는 셈이다.
압수된 마약류의 양도 급증했다. 지난달 30일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실의 '마약류 퇴치 교육 지원에 관한 입법 토론회(마약퇴치 입법 토론회)'에 참석한 김보성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 과장은 "지난해 압수 마약류는 필로폰(569.9kg), 코카인(435.7kg), 대마초(91.2kg) 순"이라며 "2017년 대비 5년 새 압수량이 8배 늘었다"고 밝혔다.
국제마약조직을 통한 밀수가 급증한 점이 마약사범 증가의 배경으로 꼽힌다. 김보성 과장은 "지난해 압수된 마약류 시가는 무려 1조8,400억 원인데, 소매가로 계산하고 또 암수율을 고려했을 때 실제 시장 규모는 훨씬 클 것"이라고 말했다.
장재인 한국마약퇴치본부 이사장 역시 지난 8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가 마치 마약의 신흥시장으로 여겨질 만한 상황이 조성됐다. 필로폰 가격을 보면 국내 거래 가격이 1g당 450달러로 태국(13달러)이나 미국(44달러)보다 크게 높다. 다른 마약류도 비슷하다. 자연히 밀수 동기가 커지고 공략 대상 시장이 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하수처리장 역산하면...1,300명 중 1명이 매일 마약
수사기관에 검거된 마약류 사범은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지난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한 '하수역학 기반 신종불법 마약류 사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1년간 전국 57개 하수처리장 모든 곳에서 필로폰, 펜디메트라진, 펜터민, 메틸페니데이트 등 불법 마약류가 나왔다.
놀라운 건 하수처리장에서 검출된 마약류의 양이다. 식약처는 사람이 약물을 삼키거나 주사하면 대소변으로 다시 배출하는 점을 이용해 하수처리장에 모인 마약 잔여물로 시중에 유통되는 마약량을 역산(逆算)했는데, 2021년 기준 인구 1,000명당 하루에 투약하는 필로폰 사용량이 22.9㎎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인 필로폰 투여량이 1회에 30㎎ 정도니, 인구 1,300명 중 1명꼴로 매일 필로폰을 1회씩 투약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더 큰 문제는 마약류 사범이 점점 어려진다는 사실이다. 김보성 과장은 "마약류 사범을 연령별로 보면 예전에는 주요 수요층이 30~40대였는데, 이제는 20~30대"라며 "19세 이하 청소년 마약류 사범은 10년 새 11배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마약퇴치 입법 토론회에 참석한 전영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역시 "마약류 사범 중 10~20대 증가를 눈여겨봐야 한다"며 "최근 5년간(2017~2021년) 10~20대 마약류사범은 2,231명에서 5,527명으로 2.5배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초범이 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영회 한국중독전문가협회 회장은 경찰청 자료를 인용하며 "마약 사범 초범 비율이 2017년 69.2%에서 꾸준히 늘어 2020년 78.5%, 2021년 7월 기준 80%에 달했다"고 짚었다.
온라인 익숙한 젊은 세대...마약 심각성 인지 못해
전문가들은 마약 사범 연령이 낮아지고, 초범 비율이 느는 가장 큰 이유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다크웹 등을 통한 비대면 거래 증가를 꼽는다. 젊은 층이 디지털플랫폼에 익숙하다 보니 마약류 거래에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김영호 회장은 "국내 다크웹 가상자산을 이용한 마약류 거래 적발건수가 2019년 82건에서 2020년 748건, 2021년 832건으로 급증했다"며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불법 약물시장에서 무역, 항공, 선박, 국제특송 등의 방법으로 전달하는 약물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고 짚었다.
마약류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보니 젊은 층의 마약에 대한 거부감, 죄책감이 줄었다는 설명이다. 실제 식약처가 2020년 진행한 '마약류 심각성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에서 연령이 낮을수록 심각성에 대한 인식도가 낮게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마약 수사를 전담으로 하는 컨트롤타워를 신설해 마약 공급망 차단에 주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한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팀장은 "미국 마약청(DEA)과 같은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마약에 대한 통제와 예방교육 시스템, 치료와 재활 시스템 등이 종합적으로 마련돼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 예방‧재범 방지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진묵 인천참사랑병원 마약중독상담실장은 "마약류 사범에 대한 엄벌주의만으로는 재범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 형사처벌 이후 지속적인 관리로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집행유예나 기소유예를 하는 경우 실효성 있는 치료 및 재활 프로그램과 연계되어야만 재범을 억제할 수 있지만 현재 효과적인 연계가 전혀 없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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