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1명, 발달장애를 답하다]
<2>인프라 찾아 떠돈다
17개 광역지자체 중 12개 지자체서
이사했거나 이사 고려 비율 60%이상
"특수학교 가려면 1시 30분 버스 타야"
현행법, 특수학교 용지 확보 의무 배척
일반학교 특수학급도 부모가 싸워야
편집자주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17개 광역지자체별로 발달장애인 인프라를 설문조사했습니다. 복지관, 의료기관 등의 엄청난 대기기간, 막대한 치료비용, 특수학교를 찾아 떠돌아야 하는 비극 등 그 열악함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전국 1,071명의 발달장애인 가족이 응해준 그 결과, 4회에 걸쳐 총 12개 기사와 인터랙티브로 찾아갑니다.
"원래 살던 지역에 특수학교가 없어 많은 빚을 지고 이사했지만 이사 간 곳에는 학교가 있어도 장애아들이 너무 많아서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서울의 발달장애아 부모는 한국일보 설문조사에서 이런 현실을 전했다. 빚을 지고 이사했지만, 원하는 학교에 아이를 보낼 수 없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본보 설문조사에서 '본인 혹은 가족의 치료·재활이나 교육을 위해 이사를 한 경험이 있으십니까'라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변은 세종 63.6%, 인천 62.5%, 충북 50% 등에 이르렀다.
'고민했지만 실제 이사를 가지는 못했다'는 답변까지 합치면,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12개(70.6%) 지역에서 이사를 했거나 이사를 고려한 비율이 60%를 넘었다. 주요한 이유는 특수학교다.
우리 지역에 특수학교가 없어요
경남의 한 학부모는 "경남 진해에 특수학교가 빨리 완공되길 원합니다. 아이가 지금은 일반학교 특수학급에 다니고 있지만 중학교 진학 시 특수학교가 우리 지역에 없어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속히 진행되도록 힘써 주세요"라고 남겼다.
진해뿐이겠는가마는, 설문에 담긴 목소리를 토대로 우선 진해지역을 들여다봤다. 진해구가 속한 창원시에는 특수학교가 세 개 있다. 각각 성산구, 마산회원구, 마산합포구에 있어 진해구에 사는 발달장애인에겐 너무 멀다.
2020년 경남교육청은 올해까지 진해구 풍호동 그린벨트에 공립 특수학교인 '나래울학교'를 신설할 예정이었다. 약속한 시기가 됐지만 개교 일자는 2025년 3월로 3년이나 미뤄졌다. 경남교육청은 "(예정된 부지가) 그린벨트 지역이다 보니 국토교통부에서 면적 전부를 승인받기 쉽지 않다"며 "2019년 최초 중앙투자심사에서 받아뒀던 면적에 비해 국토부 승인 면적이 줄면서 승인이 안 된 부지는 매입을 못 했다"고 밝혔다. 경남교육청은 잔여 부지 소유주와의 협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울산에서도 2019년부터 남구 제3공립학교(가칭) 설립에 돌입했지만 보상 마찰, 협의 지연 등의 이유로 개교 일정이 미뤄지고 있다. 울산 남구에서 중증 자폐성 장애 아들 박서준(17)군을 키우는 전은정(53)씨는 "울산에 특수학교가 세 개밖에 없는데 지금 다니는 특수학교는 셔틀 버스를 타도 한 시간이나 걸린다"고 토로했다.
특수학교는 왜 외진 곳에만 지어질까
대전으로 가보자. 대전의 한 응답자는 "특수학교의 위치를 보면 꼭꼭 숨어 있다. 매우 기대했던 해든학교의 경우 말도 안 되는 위치에 있다. 대전 중구에 사는데 스쿨버스 노선을 보니 아이가 버스를 1시간 30분이나 타야 한다"고 말했다. 해든학교는 대전 대덕구 도심에서 한참 떨어져 차도조차 제대로 없는 곳에 있다. 해든학교와 가장 가까운 거주 단지인 신탄진동과도 시내버스로 20분 떨어져 있었다.
충남 천안에서 6세 중증 자폐성 장애 아들을 키우는 전민혜(가명)씨 역시 "천안은 특수학교가 2개밖에 없고, 인근인 아산조차 하나뿐"이라며 "셔틀 버스를 이용해도 왕복 2시간"이라고 말했다.
몇 안 되는 특수학교가 외진 곳에 지어지는 이유는 현행법이 특수학교 용지 확보를 보장하지 않아서다. 학교용지 확보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300가구 이상 도시 개발 사업 시행자는 학교용지 조성·개발에 대한 계획을 사업 계획에 포함해야 한다. 이때 교육감은 학교용지 매입비용 절반 부담을 협의한다. 300가구 미만 개발 사업이더라도 교육감이 시행자로 하여금 학교 용지를 확보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문제는 이 특례법에 특수학교가 빠져 있다. 즉 일반학교 용지는 교육감 주도하에 어떻게든 확보되는 반면 특수학교 용지 확보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도 없다는 뜻이다. 특례법 대상에 특수학교를 포함하는 개정안이 발의된 적도 있지만 1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특수학급 설립 요구하면 유별난 엄마"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27조에 따르면 각 유치원, 초·중·고는 특수교육 대상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특수학급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이마저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세종시에서 15세 지적장애 자녀를 키우는 심향기(가명)씨는 자녀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1년여 매달린 끝에 지금 다니는 중학교에 특수학급을 만들어냈다.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심씨는 "중학교 측도, 비장애인 학부모들도 ’기존에 특수학급이 있는 중학교를 찾아 가면 될 것이지, 왜 없는 곳에 새로 만들어 달라고 하나’라며 나를 이상하고 유별난 엄마 취급했다"고 말했다.
심씨는 이어 "그나마 우리 아이 말고도 다른 아이가 한 명 더 있어 특수학급이 생길 수 있었다"며 "직전까지는 '한 명 가지고 어떻게 특수학급을 만드냐'며 학교에서 예산·인력 문제를 계속 따져왔다"고 토로했다.
초등학교·중학교의 경우 특수교육 대상자가 6인을 초과하면 2개 이상의 학급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울산에 거주하는 발달장애인 부모는 "울산 방어진초 특수학급 증설이 안 돼 학교 정문을 마주 보고 살면서도 멀리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방어진초 관계자는 "지난 1월부터 대대적인 내부 공사가 진행 중인 데다 교실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2025년까진 증설이 어렵다"며 "특수교사 역시 기존 특수학급 인원 6명 외에 순회교육(특수교육 교원이 직접 방문해 실시하는 교육) 2명까지 감당하고 있어 상황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수학교 다니는 발달장애인 절반 안 돼
학령인구(7~18세)의 발달장애인 수는 5만1,445명(지난해 기준). 올해 4월 기준 전국 192개 특수학교(발달장애인 학교는 140개가량)에 다니는 발달장애인은 2만1,076명이니, 절반이 채 안 되는 인원만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다.
한국일보 설문에서는 자녀가 특수학교에 다니거나 다닌 적이 있다는 응답이 제주가 38.5%로 가장 적었고, 부산이 84.3%로 가장 높았다. 전반적으로 60~70%로 정부 통계보다 높았는데, 현재가 아닌 과거에 다닌 경험까지 포함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서울(55%), 경남(52.1%), 충남(51.9%), 대구(51.5%)는 특수학교 경험이 적은 편이었다.
전체 응답자 1,071명 중 33명은 '(특수학교 입학을) 신청했으나 탈락했다'고 답했다. 물론 '신청한 적이 없다'(제주 59.6%, 경남 45.9%, 대구 45.5% 등)는 비율이 높은 곳도 있었지만, 이들이 모두 일반학교를 선호해서라고 보긴 어렵다. 주변에 특수학교 자체가 없어서인 경우도 많다.
통합교육을 통해 일반학교에서 발달장애 아이들을 함께 교육시키고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방향에 대한 필요성도 높지만, 지금처럼 일반학교에서 특수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특수학교 선호를 바꾸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전의 설문 응답자는 "비장애인 지인들은 알고보니 학교는 언제든 들어갈 수 있지만 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일반 학교에 보내고 싶어서 보내는 줄 알고 있다"며 "일반학교에 다니는 내 아이는 특수학교에 가고 싶어도 티오가 나지 않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인터랙티브: 클릭하시면 1,071명 설문조사 결과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이 되지 않으면 주소(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disability/)를 복사해서 검색창에 입력해주세요.
◆1071명, 발달장애를 답하다
<2>인프라 찾아 떠돈다
<3>밑빠진 독에 돈붓기
<4>인력공급, 양과 질 놓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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