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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멋진 세계' 현실화, 형사법정 이전과 이후에 달렸다

입력
2022.10.05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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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박주영부장판사

편집자주

<어떤 양형 이유> <법정의 얼굴들>의 저자인 박주영 판사가 세상이란 법정의 경위가 되어 숨죽인 채 엎드린 진실과 정의를 향해 외친다. 일동 기립(All rise)!


연 3.5만명 출소, 3년 내 8,800명 재수감
가정과 사회 지지 대신, 낙인이 걸림돌
'슬기로운 출소 후 생활'에 눈길 돌려야

형사재판을 오래 하다 보니 범죄자의 삶에 관심이 많다. 실화, 소설, 영화를 가리지 않는다. 액션, 멜로, 다큐, 장르도 불문.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멋진 세계'는 그중에서 손꼽을 만한 작품이다. 영화 내내 흠씬 두들겨 맞는 느낌이었다. 영화가 끝나자 목젖과 눈알이 아팠다. 좋은 영화는 2D로 찍어도 4D의 효과를 내는 건가. 영화의 성취에는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미카미 역)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전직 야쿠자 미카미는 사생아로 태어나 14세에 소년원을 가고, 살인죄로 13년을 복역한 후 출소한다. 그는 흉악한 전력이 믿기지 않을 만큼 눈처럼 담백하다. 누가 침 뱉으면 같이 뱉고, 찌르면 그도 찌른다. 호의를 베푸는 이에겐 다정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고함을 친다. 4세 무렵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미카미는 어머니의 소재를 수소문하지만 끝내 찾지 못한다. 그날 그는 보육원 아이들과 축구를 하다 말고 모로 누워 운다. 미카미는 다 늙은 아이다. 법은 살인한 아이는 눈감아 주지만, 아이처럼 천진한 살인범에게는 혹독하다. 교도소에 있느라 운전면허가 만료된 미카미는 면허를 갱신하려다 실패한다. 마침내 세상에 적응하고 그토록 바라던 평범한 일상을 얻는 미카미. 그러나 운전면허 갱신조차 버거운 그에게 삶을 갱신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오랜 복역으로 어긋나 버린 시간은 아무리 시계 용두를 돌려도 맞출 수 없다. 미카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은 푹푹 내리고 장면들은 무심해서 아름답다. 살인범보다 더 비정하고 야비한, 구역질 나도록 멋진 이 세계의 민낯을 까발리는 게 영화의 의도라면, 완벽하다.

일주일에 수십 명의 전과자를 보는 내겐 지겨운 서사인데 왠지 무척 낯설다. 내가 본 사람 중에 이런 이는 없었다. 영화가 아무리 현실을 투사해도 발뒤축도 못 쫓아간다. 영상이든 글이든, 어떤 매체도 현실의 압도적 부조리와 고통의 그 방대한 데이터를 전부 담을 순 없다. 그처럼 아름다울 리도 물론 없고.

2021년 3만5,844명이 출소했다. 그중 취업자는 1,725명, 출소 후 3년 내 교도소로 되돌아간 사람은 8,817명(24.6%)이었다. 벌금형도 있을 테니 재범률은 훨씬 더 높을 것이다. 법무부 산하 법무보호복지공단은 출소자의 사회적응을 돕는 기관인데, 관련 법률이 없어 사업 수행에 지장이 많다. 연구에 따르면 가장 효율적인 재사회화 기관은 가족이고, 재범을 막는 주요 요인은 사회적 지지인데, 낙인이 지지의 가장 큰 걸림돌로 조사됐다.

낙인보다 더 나쁜 게 무관심이다. 형사사법 국면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은 법정이다. 이게 문제다. 법정은 누군가 살해되어야만 열리는데, 이때는 늦다. 진짜 주목받아야 할 곳은 형사법정 이전과 이후, 범죄 예방의 영역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에는 관심이 없다. 누군가 죽어야만 기사가 된다. 사전 예방은 그나마 조금씩 주의를 끌기 시작했지만, 재사회화를 통한 재범 방지라는 사후 예방에는 흥미가 없다. 범죄자에 대한 관심은 슬기로운 감방생활까지다. 슬기로운 출소 후 생활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미카미의 갱생을 도운 다섯 사람으로부터 카메라가 경쾌하게 도약해 드넓은 창공에서 멈추면, '멋진 세계'도 끝이 난다. 같은 하늘 아래 어찌 선하고 고운 것만 존재하겠는가. 어쩌면 멋진 세계란,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착한 사람, 못된 사람, 죄 없는 사람, 죄 많은 사람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사는 곳이 아닐까. 이런 생각, 저런 행동을 하는 수많은 사람이, 때론 시기하고, 때론 사랑하면서, 서로 멱살을 잡고 우당탕 우지끈 좌우로 휘청대면서도, 기어코 앞으로 나아가고야 마는 세계, 마치 물고기나 보드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닮은, 그런 세계 말이다.

박주영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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