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 입술, 등 쪽의 채색흔적과 전신채색 논란
'불상=예술작품' 관점에선 인정 힘든 전신채색
화려함 추구하는 종교대상이라면 충분히 가능
나의 미술사 박사 전공은 고건축이다. '스님이 웬 고건축을?'이라고 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건축은 바꿔 말하면 사찰 건축이다. 우리나라 건축 문화재 대다수가 사찰이 아닌가!
그런데 내 지도교수님 전공은 불상이다. 당시 학과에 건축 전공 교수님이 안 계셨기 때문이다. 지도교수님 전공이 불상이다 보니, 수업은 불상과 관련해서 많이 듣곤 했다. 그러다 하루는 석굴암 불상에 색이 칠해졌냐는 논점이 촉발됐다.
박사 수업이라는 게, 논점이 하나 터지면 수업은 때로 당초 논점에서 벗어나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곤 한다. 석굴암 불상의 눈동자에는 오늘날까지 파란색이, 그리고 입술에는 붉은색이 남아 있다. 또 1929년 일제강점기 자료에는 등 쪽에 녹청색도 남아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불상에 색을 칠하는 방식은 눈동자와 입술만 칠하는 것과 전체를 다 채색하는 두 가지다. 여성들이 간단하게 입술만 바르고 외출하는 것과 전체 화장하는 차이라고나 할까? 지도교수님은 눈과 입술만 칠했다는 주장이고, 난 전신 채색이었다.
불상의 등 쪽에 존재하는 녹청색은 장삼에 칠해진 색이다. 즉 전신 채색의 유력한 증거다. 그런데 교수님은 이건 조선시대 채색 흔적으로 통일신라 때는 그렇지 않았다는 반론이다. 교수님이 전신 채색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건,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석불 전체에 석회를 바르고 색을 입혀야 했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석굴암 불상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는 셈이다.
불이나 철불은 재료상 피부가 매끄럽지 않다. 때문에 피부가 안 좋은 분들이 두껍게 파운데이션을 입히고 그 위에 색조 화장을 하는 것 같은 작업을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일본의 가부키 화장처럼 되어서 불상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설왕설래 논점이 달구어지다가 마침내 교수님은 "스님은 안목이 없습니다. 어떻게 석굴암 불상처럼 완성도가 높은 불상에 석회를 바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라는 말을 했다. 나 역시 "종교미술의 중심은 예술성에 앞선 선명성"이라고 항변했다. 당시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과열되어 휴식했던 것 같다.
이런 문제가 벌어진 건 불상을 '예술작품으로 볼 것이냐'와 '종교적인 예배 대상으로 볼 것이냐'의 차이 때문이다. 예술로만 보면, 석굴암 본존에 알록달록 색을 칠하는 것은 분명 야만이다. 그러나 예배 대상으로 보면, 기원의 구심점이 선명하고 뚜렷해야 하는 것은 필수다. 기도하는데, 희뿌연 화강암의 회색빛은 말 그대로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든 종교미술은 원색을 주로 사용하는 화려함의 물결이다. 요즘에야 색이 너무 흔하므로 원색이 아닌 파스텔톤을 선호하지만, 과거 동아시아에서 화려한 색은 임금과 종교만 사용할 수 있는 특수하고 고귀한 상징이었다. 고건축의 색인 단청(丹靑)만 봐도 번역하면 '울긋불긋'이며, 영의정 집에도 단청은 허용되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로마 조각하면 떠오르는 순백의 대리석도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모조리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는 점이다. 즉 순백의 신화가 깨진 것이다. 대리석이 너무 매끄럽기 때문에 채색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깔끔하게 박락되어 깊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말씀.
모든 종교는 화려함을 추구한다. 그리고 화려함으로 이상의 행복을 말하며, 강렬한 인상을 주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종교미술은 순수미술과는 다른 특수미술이며, 예술을 넘어선 종교와 종교 안의 예술을 구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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