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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와 글꼴

입력
2022.10.07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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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곡선에 싱싱한 탄력이 있고, 간결하게 새침하다.' 어느 손글씨 대회에서 으뜸상을 수상한 82세 할머니의 글씨에 대한 심사평이다. 한글 형태가 주는 생동감과 글씨 주인의 개성을 함께 드러낸 표현을 보며 손글씨의 매력을 새삼 되짚어 본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손글씨, 손편지는 뒷전에 밀려난 존재다. 미국의 필기구 제조협회가 '국가 손글씨의 날'을 정해 매년 손글씨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행사는 연필과 펜, 종이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장삿속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다.

이와 달리 일상에서 접하는 한글 글꼴은 컴퓨터의 보급 이후 급속도로 다양해졌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한글 글꼴은 6,000여 종을 넘어선 지 오래다. 골목골목 깔끔하고 개성 있는 간판과 홍보물, 조화롭게 편집된 도서, 영상의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자막, 가사로만 만들어도 충분히 흥겨운 뮤직비디오 등은 다양한 글꼴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조선 시대 활자체는 당대에 좋은 글씨로 알려진 글씨체를 다듬어 제작됐다. 사회 구성원의 공통된 미감이 반영된 글씨가 활자의 바탕이 된 것이다. 글꼴의 풍요 속에서도 기준 삼을 만한 글씨는 찾기 힘들다 보니 글꼴 제작자들은 방향성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작업자가 컴퓨터로 자신의 글씨를 바탕으로 만든 글꼴은 개성 있고 실험적이지만, 보편적 미감에 맞지 않아 한때 유행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함께 쓰고 누리던 공동의 경험들이 한글 글꼴의 든든한 거름임을 기억하며 글자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아 나만의 한글을 표현해 보는 한글날을 보냈으면 좋겠다.

최혜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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