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로 뱅크런 우려, 수년째 인출 제한
전역서 폭력 사태…반정부 운동으로 확대 양상
"내 돈 내놔라!" 레바논에서 은행의 예금 인출 제한을 풀어달라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최악의 경제 위기로 뱅크런(현금 대량인출)이 발생할 우려가 커지자, 은행들이 예금을 함부로 인출 못하도록 막고 있어서다. 은행에 돈을 맡겨 놓고도 쓸 수 없는 시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자기 돈을 찾기 위해 은행에서 인질극을 벌이는가 하면, 수술비 마련을 위해 시위에 참가한 국회의원도 있다.
벼랑 끝 몰린 시민들…현금 인출 위해 인질극까지
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신시아 자라지르 베이루트 지역 의원은 이날 오전 두 명의 변호사와 함께 안텔리아스 마을의 한 은행에 들어가 시위를 시작했다. 그는 "며칠간 은행을 들락날락하며 (병원) 기록을 제출했지만 아무 답도 받지 못했다"며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자라지르는 4시간을 버틴 끝에 수술비로 쓸 8,500달러(약 1,200만 원)를 찾을 수 있었다.
레바논에서는 올해 초부터 이와 비슷한 시위 및 폭력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8월에는 한 40대 남성이 은행에 소총을 들고 가 "아버지 병원비를 인출하게 해달라"며 인질극을 벌였다. 남성은 이 은행 계좌에 21만 달러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병원비로 쓸 5,500달러도 뽑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달엔 한 여성이 "언니의 암 치료비가 필요하다"며 은행에 장난감 총을 들고 가 직원들을 위협했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시민들은 오히려 이들을 "영웅"이라 부르며 응원했다.
2019년 시작된 레바논의 경제난은 코로나19 대유행과 2020년 베이루트 항구 폭발, 올해 우크라이나 전쟁 등 악재가 겹치며 최악으로 치달았다. 레바논의 리브르화 가치는 2019년부터 95% 넘게 폭락했고, 인구의 80%가량이 빈곤선 아래로 떨어졌다. 세계은행(WB)은 레바논의 경제위기가 "19세기 중반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하고 장기적인 불황"이라고 진단했다.
반정부 시위로 번지는 금융위기…"IMF 합의 시급"
시위는 반정부 운동으로도 번지는 양상이다. 같은 날 베이루트 중앙은행 앞에선 분노한 시위대가 도로를 막고 건물에 화염병을 던지며 정부 퇴진을 요구했다. 라미 올레이크 예금자 단체 대표는 레바논뉴스에 "정부가 자본 통제법을 추진할 계획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시위)만으로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더 나아간 조치를 취하겠다"고 예고했다. 레바논 정부는 예금 인출 제한을 표준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 중이다.
은행들은 폭력 사태를 멈춰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은행이 예금 인출 제한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금융당국의 의지인 만큼 은행은 잘못이 없다는 주장이다. 지난 4일 레바논은행연합은 성명에서 "금융위기의 근본적 책임은 정부에 있는데 은행이 부당하게 표적이 됐다"며 정부에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상을 마무리하라고 촉구했다. 레바논 정부는 올해 4월 3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IMF와 합의했지만, IMF가 요구한 개혁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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