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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안에서는 판사가 갑(甲)이다

입력
2022.10.07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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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인
소제인변호사

편집자주

변호사 3만 명 시대라지만 수임료 때문에 억울한 시민의 ‘나홀로 소송’이 전체 민사사건의 70%다. 11년 로펌 경험을 쉽게 풀어내 일반 시민이 편하게 법원 문턱을 넘는 방법과 약자를 향한 법의 따뜻한 측면을 소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변호사를 하면서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법정 갈 때 허름한 옷을 입어야 하는지", "판사 앞에서 우는 것이 효과가 있는지"와 같은 이미지 메이킹(image making)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편에는 '법정 안에서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대부업체가 만수(74)씨를 상대로 대여금 소송을 제기했다. 대부업체가 차용증을 제출했기 때문에 법대로 하면 결론은 간단했다. 만수씨는 원금, 이자, 지연이자, 소송비용까지 전부 지급해야 했다. 변론기일에 판사는 대부업체 직원에게 "이자를 조정할 수 있는지" 물었고, 직원은 "회사 규정상 어렵다"고 대답했다. 판사는 만수씨에게 최종 진술기회를 주었고, 만수씨는 "아들이 몇 년 전에 사업자금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도장과 서류를 가져갔다. 차용증은 이번에 처음 보았다. 아들과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라고 힘없이 진술했다.

법정 안은 갑자기 숙연해졌다. 방청석에서 재판 순서를 기다리던 10여 명의 사람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판사의 다음 말에 집중했다. 원래대로라면 판사는 재판을 끝내고 선고기일을 잡아야 했지만, 다시 직원에게 말했다. "다른 회사는 되는데 그 회사는 왜 안 되느냐. 돌아가서 다시 한번 잘 알아보라." 직원은 알겠다고 하면서 서류를 챙겨 일어났다.

다음 변론기일에 직원은 "회사 의사결정 절차가 복잡하므로 법원에서 이자를 감액한 강제조정결정을 해주면 검토해보겠다"고 진술했다. 판사는 그때까지 발생했던 이자와 지연이자는 모두 감액하고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으로 하는 강제조정결정을 보냈고, 회사는 수용했다. 당연히 만수씨 부담은 크게 줄어들었다.

무엇이 판사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만수씨의 목소리와 태도에서 묻어난 삶의 고단함과 진실성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위장 쇼'를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부러 낡은 옷을 입고 억지 눈물 흘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판사에게 안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한편, 결론이 정해지지 않은 어떤 사건에서는 원고와 피고 간에 프레임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실과 법리를 다투는 것과는 별개로, '강자'와 '약자' 또는 '정의'와 '불의'의 구도를 잡아 상대방을 '불의한 강자'로, 자신을 '억울한 약자'로 어필하면서 유리하게 사건을 끌고 가려는 것이다. 혹시나 상대방에 의해 악의적으로 불의한 강자 프레임이 씌워졌다면 이를 해명하기 위해 애를 먹어야 한다. '변론 전체의 취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사소송법에 따르면, 판사는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를 참작하여 자유로운 심증으로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사실주장이 진실한지 아닌지를 판단한다(민사소송법 제202조). 이를 "자유심증주의"라고 한다. 사실주장이 진실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을 고려하는 것이다. 증거선택과 증거가치 판단도 자유심증에 속한다. 물론 한계가 있어서 자의적 판단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폭 넓게 인정된다. 당사자의 태도는 판사의 심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좋은 인상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진실에 바탕을 두어야 설득력을 갖게 된다. 예컨대, 강자와 약자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 회사가 직원을 해고한 사건이라면 회사가 강자로 느껴지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회사가 약자일 수 있다. 그런 지점을 찾아서 진실에 기반한 이미지 메이킹을 해야 한다.

소송은 통상 6개월~1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변론기일에 판사의 말을 잘 듣다 보면 어느새 판사의 인간적 면모도 느낄 수 있게 된다. 내 재판을 맡고 있는 판사를 틈틈이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판사를 더 잘 설득할 수 있을지 연구한다면 적절한 태도는 저절로 만들어질 것이다. 그래도 어렵다면, 한 가지만 꼭 기억하자. 법정 안에서는 판사가 갑(甲)이다.

소제인 법무법인(유) 세한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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