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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서 아이 더 낳자, 주변 지역은 출생 줄었다... 돈의 함정

입력
2022.10.20 04:30
수정
2022.10.20 08:0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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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속 없는 출산 '錢'쟁]
<상> '제로섬' 전락, 출산지원금
광주 출생, 1046명 감소→638명 증가 반전
출산지원금 효과, 인근 시·군은 489명 뚝
"행정 동원 쉽지만 가성비 낮은 정책"

#광주에서 출·퇴근하는 전남 영광군 공무원 A씨의 주민등록상 집은 부모 댁인 영광군이다. 소속 공무원은 군내에 주소지를 두라는 방침을 기꺼이 따랐다. 영광군이 전국에서 출산지원금을 가장 많이 줬기 때문이다. 정작 지난해 낳은 자녀의 호적은 서류상 남편 혼자 사는 광주로 적었다. 작년부터 영광군보다 많아진 광주의 출산지원금 580만 원을 받기 위해서다.

#대전 토박이 B씨는 지난해 보육 기반시설이 좋은 세종으로 이사했다. 대전 직장까진 40분 걸리나 내년 초 태어날 아이를 생각해 내린 결정이다. 그런데 대전시가 올해부터 영아 자녀 1명당 월 30만 원을 준다는 소식에 고심하고 있다. "출산지원금이 적은 세종과 비교되더라고요. 주소라도 대전 동생 집으로 잠시 옮겨야 하는 건 아닌지…"

산부인과 병원의 신생아실이 비어 있다. 뉴시스

산부인과 병원의 신생아실이 비어 있다. 뉴시스


광주, 출산 도시로 탈바꿈했지만…

17개 시·도별 2021년 출생 통계를 보면 갈수록 심화하는 저출생을 피해 간 의외의 지역이 있다. 바로 광주다. 지난해 전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26만600명으로 1년 전보다 4.3%(-1만1,800명) 줄었는데 광주는 오히려 7,956명으로 8.7%(638명) 뛰었다. 광주를 제외하고 출생아가 증가한 지역은 젊은 공무원이 많이 사는 세종뿐이다.

최근 몇 년간 유일하게 출생아가 늘어왔던 세종과 달리 광주도 여느 시·도처럼 저출생 늪에 빠져 있었다. 2020년 출생아만 봐도 2019년 8,364명에 비해 1,046명 감소했다. 겉보기엔 1년 사이 아이 낳기 좋은 도시로 탈바꿈한 광주. 그 배경엔 크게 불어난 광주의 출산지원금과 3년 연속 출산율 전국 1위 영광군의 추락이 있다.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광주는 지난해 1월부터 신생아 가구에 주는 일회성 출생 축하금을 첫째 기준 1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높였다. 생후 24개월까지 월 지급액 20만 원인 시 차원의 육아수당도 신설했다. 첫째 기준 10만 원에서 총 580만 원으로 뛴 출산지원금은 부모 중 한 사람만 출산 3개월 전부터 광주에 주소지를 두면 받을 수 있다.

광주의 출산지원금은 인근 시·군 중 가장 많은 영광군(첫달 100만 원·생후 20개월간 월 20만 원)의 500만 원을 웃돌았다. 그러자 출산율 1위 영광군의 아성이 흔들렸다. 영광군은 지난해 출산율 1위를 유지하긴 했지만 전년 2.46명에서 1.87명으로 뚝 떨어졌고 출생아 역시 같은 기간 558명에서 413명으로 145명 줄었다.

'블랙홀' 광주 지원금, 인근 시군 출산 흡수

영광군에 나주·함평·담양·장성·화순 등 광주를 둘러싼 다른 시·군까지 더하면 지난해 출생아는 1,696명으로 489명(-27.6%) 감소했다. 이는 지난해 광주에서 늘어난 출생아 638명과 엇비슷하다. 통 큰 출산지원금이 원래 광주 주민의 출산을 유도했다기보다 인근 6개 시·군의 출산 수요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광주는 지난해 전입 인원이 줄어 인근 시·군에서 낳았을 아이가 광주로 넘어왔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반면 인근 시·군은 대부분 지역의 출산지원금 요건이 부모 중 한 사람만 거주해도 된다는 점을 따져봐야 한다고 반박한다. 애초 직장, 집 문제로 광주와 인근 시·군에 주소지를 각각 두고 '서류상 따로 사는 부부'가 많기 때문에 지난해 출산지원금을 높인 광주로 출생신고가 몰렸다는 얘기다.

광주와 인근 시·군의 출산 현황은 지역별로 제각각인 출산지원금이 출산율을 높이기보다 예비 부모가 돈을 더 주는 지역으로 이동하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를 뒷받침한다. 보건사회연구원 등은 2019년 "출산지원금 증가가 지방자치단체(지자체) 단위에서 단기적으로 효과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인 효과는 검증하기 어렵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광주가 공격적인 출산 정책을 도입한 건 결국 돈과 결부된다. 지방정부 돈줄인 지방재정교부금을 인구에 비례해 책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자체가 돈을 써도 결국 출생아 전체로 보면 나아진 게 없다는 점이다.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당장 광주와 인근 6개 시·군의 출생아 증감을 모두 더하면 7개 지역에서 새로 태어난 아이는 149명 증가에 그친다. 경쟁하듯 출산지원금을 높인 게 '윈윈 정책'이 아닌 승자 없는 '제로섬 게임'이었던 셈이다. 전남도는 광주에 빼앗긴 인구를 되찾기 위해 광주보다 더 많은 출산지원금 지급을 올해 상반기 검토했으나 결국 재원 문제로 포기하기도 했다.

대도시도 도입, 돈만 쓰고 저출생 그대로

게다가 출산지원금은 각 지자체의 핵심 정책으로 굳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기초 지자체 중심으로 지급하던 화끈한 출산지원금을 광주 등 보육 기반시설이 좋은 지방 대도시도 채택하는 추세다.

예컨대 대전은 올해부터 생후 36개월까지 월 30만 원씩 총 1,080만 원을 주는 양육기본수당 사업을 개시했다. 광주 사례처럼 출생아가 대전에선 늘더라도 생활권이 겹치는 세종·공주·보은·옥천·계룡·금산 지역은 줄어들 수 있는 상황이다.

출산지원금 업무를 하는 한 지자체 관계자는 "산부인과, 어린이집 등을 잘 갖춘 대도시마저 출산지원금을 많이 주면 기초 지자체는 당해낼 수 없다"며 "재정 여력이 넉넉하지 않아 출산지원금을 더 높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전영수 한양대 교수는 "출산지원금은 없는 것보단 낫겠지만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생활의 안정성은 확보해주지 못한다"며 "행정이 동원하기는 쉬우나 수혜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낮은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실속 없는 출산 '錢'쟁] 글 싣는 순서


<상> ‘제로섬’ 전락 출산지원금

<하> 저출생 반전 기회 있다


세종=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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