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기한 미준수로 계약 해지 사업 396곳
주민 민원에 지자체 인허가 지연 부지기수
발전 5사, 위약보증금 챙기며 관리엔 '팔짱'
지난 5일 충북 청주의 한 야산 중턱. 밤나무와 상수리나무, 소나무가 빽빽한 숲속에서 축구장 두 개 넓이는 돼 보이는 공터가 나타났다. 지난여름 돋아난 잡풀과 거미줄이 무성했고 군데군데 진흙탕을 이룬 지표면이 공사로 산을 깎아낸 흔적을 드러냈다. 주변 농가의 한 주민은 "이곳에 태양광 발전소를 짓는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라며 "땅 주인이 지금은 호두나무 밭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해당 공터는 한 발전사업자가 설비용량 560킬로와트(㎾)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짓기 위해 공공기관인 한국남부발전과 장기 고정가격 계약을 했던 곳이다. 그러나 준공시한을 못 맞춰 지난해 8월 계약이 파기된 후 방치되고 있었다.
이처럼 태양광 발전소를 짓기로 했다가 정부가 정한 준공기한을 지키기 못해 사업이 좌초된 사례가 지난 5년간 400건에 육박했다. 발전 공기업들이 재생에너지의무할당제(RPS) 등을 지키기 위해 민간 사업자와 '묻지마 계약'을 남발한 뒤 관리를 부실하게 한 것이 주 원인으로 꼽힌다. 개발이 중단된 채 산림이 방치되는 경우에는 환경 파괴 우려도 제기된다.
준공기한 미준수로 계약 해지 태양광 396곳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전 5사(동서·서부·남부·남동·중부 발전)에서 제출받은 태양광 장기 고정가격계약(장기계약) 해지 현황에 따르면 발전소 준공기한 미준수로 계약 해지된 사례는 총 396건으로 집계됐다.
복잡한 입찰 절차까지 거쳐 계약을 따낸 발전사업자 입장에선 준공기한을 지키지 못해 계약이 파기되면 손해가 크다. 3년간 장기계약 입찰 참여 제한에다 설비용량에 따라 발전5사에 지불하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발전사업 관계자들은 준공 기한을 못 지키는 이유로 △예상치 못한 인허가 장벽 △주변 민가의 민원 △생산한 전력을 송전할 한전 계통망과 연계 지연 등을 꼽았다.
주민 민원에 따른 지자체 인허가 지연
정우식 한국태양광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개발행위 허가를 내줘야 착공이 가능한데, 지자체가 민원 등을 고려해 인허가 심사를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발전 5사가 장기계약 입찰 참여자에게 요구하는 조건 중 '발전사업 허가증'은 필수이지만, '개발행위 허가증'은 선택사항이다. 발전사업자가 장기계약을 따내고도 개발행위 허가를 받지 못하는 것도 준공이 지연되는 원인으로 꼽힌다.
홍기웅 전국태양광발전협회 회장은 "태양광 발전소 건설을 원치 않는 인근 주민들이 관청에 민원을 제기하면, 관청은 '민원부터 해결하고 오라'는 식이어서 착공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며 "그럼에도 준공기한 미준수에 3년 입찰 참여 제한의 불이익을 주는 것은 지나친 조치"라고 지적했다.
발전5사, 위약보증금 챙기며 계약 관리엔 '팔짱'
그러나 발전5사는 별도의 리스크 없이 계약 파기 속출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발전 5사가 준공기한 미준수로 발전사업자로부터 받은 위약 보증금 수입이 지난 5년간 약 17억6,000만 원이었다. 오히려 계약 파기로 인해 부수입을 올린 셈이다. 장기계약 공고와 모집·심사는 에너지공단이 맡고, 발전5사는 계약만 하는 이원화된 계약방식도 사후 관리 부실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한다.
홍 의원은 "발전 5사는 '계약이 미이행 시엔 보증금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안이한 태도를 수년간 유지해 왔다"며 "앞으로 실사를 나가서 지연 이유를 파악하고 인허가 문제와 관련해선 지자체 등과 협의에 나서는 등 사업자 지원방안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