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안보 복합위기에 국민들 공포
이재명 대표 '친일'공세 과연 타당한가
야당도 국민불안 덜어줄 책임 느껴야
점점 거세지는 북핵 위협 앞에서, 군사영역까지 포함해 한미일 3국의 긴밀한 협조가 필수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합동훈련에 대한 문제제기는 할 만하다고 본다. 현 한미 동맹 전력만으론 북핵 대응에 불충분한 것인지, 신냉전의 현 국제정세로 볼 때 3국의 군사적 밀착은 동북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를 공고화해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훨씬 멀어지게 하는 건 아닌지, 다른 곳도 아니고 일본 자위대와 손잡는 것에 대해 국민정서는 충분히 헤아려 보았는지 등등.
북한이 '레드라인' 앞에 섰다 해도 우리 정도 성숙한 사회라면 이 정도 논쟁은 해야 한다. 안보보다 더 중요한 건 없기에, 다른 어떤 의제보다 훨씬 진지하고 전문적인 토론이 필요하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는 더 그래야 하고, 특히 야당이라면 질문을 던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저렇게 묻지 않았다. 그냥 '친일'로 가버렸다.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것과, 이걸 친일로 규정하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순간 상대방은 다른 프레임으로 역공하게 되어 있다. 민주당이 '친일 프레임'을 걸자 국민의힘은 '조국과 죽창가'를 소환하며 '종북 프레임'으로 맞섰고, 지금은 뜬금없는 식민사관 공방까지 진행 중이다. 이 대표가 합동훈련을 '친일 국방'으로 선언한 그날(7일) 이후 약 일주일간 온갖 프레임이 뒤엉켜 난타전을 벌이는 사이 우리나라의 북핵 대응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군사적, 전략적, 국제정치적 토론은 사라져버렸다.
대체 어떻게 하면 중대 국가안보정책 공방이 친일에 종북, 일제와 구한말 역사논쟁으로까지 번질 수 있나.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대체 어떤 신묘한 능력을 갖고 있길래, 진지한 토론장도 금세 진흙탕으로 만드는 건가.
지금 국민들은 복합적 공포에 휩싸여 있다. 만에 하나라도 푸틴이 핵버튼을 누르는 건 아닐까. 그러면 정말 '아마겟돈'이 벌어지는 건가. 설령 푸틴의 핵카드가 소규모 전술핵시위 정도라 해도 핵사용의 봉인이 이렇게 풀린다면, 그것 자체가 북한의 오판을 고무시킬 수 있지 않나. 이젠 북한이 남한을 향해서도 공공연히 핵위협을 가하고 있는데,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경제도 매일매일이 공포다. 지금은 인플레가 공포지만, 이 인플레가 끝날 무렵이면 더 크고 센 놈(경기침체)이 올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아직 최악은 오지도 않았다"고 경고하지 않았나. 수없이 북의 도발을 겪어 왔고, 환란과 리먼 사태까지 경험했지만, 지금처럼 안보-경제위기가 복합적으로 맞물려 다가온 적은 없었다. 과거엔 국제공조를 통해 안보위기도 경제위기도 돌파했지만 지금은 그때의 미국이 아니고 그때의 중국이 아니며, 그때의 북한도 아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더 두려운 건데, 유독 정치만 일말의 공포, 한 줌의 긴장도 못 느끼는 것 같다.
국정운영에 무한책임을 지는 건 정부여당이지만, 국민의 공포감을 덜어줄 책임은 야당에게도 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안보공포, 경제공포를 느끼는 국민들을 어떻게 안심시켰던가. 불과 5개월 전만 해도 집권당이었고, 여전히 170석을 가진 슈퍼야당인데, 이 안보-경제 복합위기 상황에서 실효적 대안과 처방을 내린 적이 있기는 한가. 한미일 합동훈련을 '친일'로 몰고간 것이 안보 위협을 느끼는 일반 국민들에게 과연 어떤 메시지로 전달될까.
친일과 종북서사는 보통의 국민들에게는 더 이상 어떤 공감도 주지 못한다. 이 진흙탕 코미디의 주역은 여야 모두이지만, 시작은 분명 '친일' 공격이었다. 대통령 지지율만큼이나, 국민의힘 지지율만큼이나, 민주당 지지율이 바닥인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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