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눈에 선하게'
시각장애인 위한 화면해설작가
‘한국어-음성 설명’. 넷플릭스 자막 옵션을 누르면 한국어ㆍ일본어ㆍ영어 외에도 이 같은 선택지가 나온다. 대부분은 있는지도 몰랐을 테다. 등장인물의 표정과 행동, 배경과 소품, 화면전환 등 눈에 보이는 모든 장면을 말로 들려주는 기능이다. 예상하다시피, 화면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다.
10년간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어준 베테랑 화면해설작가 다섯이 책을 냈다. ‘눈에 선하게’라는 예쁜 제목인데, 내용은 더 찬란하다. 일에서 느낀 기쁨과 슬픔, 고민과 보람을 조곤조곤 풀어놓은 에세이. 세상에 이런 직업이 있다고? 한 번 놀라고, 화면 해설이 이렇게 어려워? 두 번 놀라며, 어떤 훈수도 없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점에서 끝내 마음을 먹먹하게 하는 책.
“우리는 나이팅게일이 아니다. 우리 또한 직업인이고 생활인이다”라는 솔직한 고백부터 단단함이 느껴진다. 사실 그렇게 겸손하지 않아도 된다. 화면해설 덕분에 시각장애인도 ‘갯마을 차차차’에서 갯마을의 풍경을 상상할 수 있고,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범인의 소름 끼치는 미소에 겁먹을 수 있으며, ‘벌새’ 마지막 장면에서 은희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알 수 있기에.
브레이킹 댄스 배틀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다운’도 화면해설이 됐다. 시각장애인이 댄스 프로그램을? 저자들은 시각장애인도 똑같이 경험의 욕구가 있고, 해설이 있다면 댄스도 즐길 수 있다고 알려준다. 베테랑 화면해설가의 설명을 잠시 감상해보자. “윙이 베로의 손을 맞잡고 그를 다리 사이로 통과시킨다. 베로가 한 팔을 옆구리에 붙여 몸을 띄운 뒤 회전! 사이드 체어 스핀을 완성한다. 이어지는 다섯 크루원의 칼군무!”
에로틱한 표현을 ‘선 넘지 않게’ 표현하는 ‘로맨틱 표현의 거장’, 화면에 나온 장소를 찾아가야 일이 풀린다는 ‘행동파 대원’, 아리송한 표현은 시각장애인에게 물어보다 보니 ‘인터뷰 고수’가 된 화면해설가도 있단다. 참고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는 전 회차가 화면해설을 제공한다고 한다. 미국은 2010년 화면해설을 의무화했다. 우리는? 대부분의 국내 OTT(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나 지상파, 케이블은 극소수만 화면해설을 제공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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