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가처분' 기각 이후 속도를 내던 '정진석 비대위원회'가 암초를 만났다. 당권 레이스가 본격화하면서 지역 당협위원회 등 조직 재정비를 두고 비대위와 일부 당권주자들 사이에 신경전이 가열되면서다. 당 조직 재정비는 차기 당대표 선거는 물론 총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파급력 강한 사안이다. 때문에 비어 있는 당협위원장 자리를 채우고 당무감사에 나서겠다는 비대위를 향해 당 일각에선 '반대파 솎아내기'라며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먼저 치고나간 건 정 위원장 측이다. 16일 여권에 따르면 정 위원장은 이달 말 국정감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현재 공석 중인 사고 당협의 위원장을 새로 선임하고 당무감사를 통해 기존 위원장을 교체하는 등 대대적인 조직 정비 절차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김행 비대위 대변인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현재 70곳에 가까운 당협 위원장이 공석이고, 당헌상 매년 해야 하는 당무감사는 총선 이후 실시하지 않았다"면서 "당의 정상화와 안정화를 위해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작업"이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사고 당협 정비와 당무감사가 '비윤 솎아내기, 당권 장악을 위한 줄 세우기 아니냐'는 비판을 향해서도 "어처구니없는 비난"이라며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고 일축했다. 김 대변인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무감사 등 조직 재정비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게 비대위의 뜻"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원외 당협위원장들과 오찬 겸 상견례를 갖는 것을 정진석 비대위가 추진하는 당협 정비 작업에 힘을 실어주는 행보로 보는 시각도 나온다.
정 위원장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당 조직 정비에 나서는 배경엔 차기 당권에 대한 친윤계 주류의 불안함이 깔려 있다. 친윤계 당대표 리더십을 중심으로 2024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 윤석열 정부의 국정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여권 주류로선, 윤 대통령을 향해 가장 날을 세우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이 당대표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1위로 독주하고 있는 상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른 유력 주자들이 확실한 친윤계가 아니라는 점도 딜레마다. 때문에 친윤계에선 역선택 방지 조항 신설, 결선투표제 도입, 경선에서 당원 투표비율 상향을 검토하고 있다.
문제는 여권 주류의 조직 정비 움직임에 대한 당내 반응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윤상현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현 비대위는 국정 뒷받침과 전당대회 준비에만 집중하고, 조직 전반에 대해서는 새 지도부에 맡기는 것이 상식"이라고 꼬집었다. 김기현 의원 측도 "당협위원장 인선과 교체는 새로 선출될 당대표가 해야 할 일"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당협위원장 인선과 당무감사가 비대위 뜻대로 진행될 경우, '60일 전에 당협위원장에게 통고'하도록 돼 있는 조항으로 인해 전당대회 시점 또한 내년 3월 이후로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다른 당권 주자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전국 당협 253곳 중 지방선거 출마 등의 이유로 6개월 이상 위원장이 공석인 ‘사고 당협’은 67곳에 달한다. 이 가운데 이준석 전 대표와 가까운 허은아 의원(서울 동대문을)을 비롯해 이 전 대표 당시 내정된 16곳의 당협위원장 교체 여부도 '윤심'을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준석 전 대표 측 인사들이 이번 조직 재정비 과정에서 교체된다면 친윤계의 '찍어내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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