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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단식' '저축만이 살길'...투자 욕망 팔던 출판가 '짠테크'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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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단식' '저축만이 살길'...투자 욕망 팔던 출판가 '짠테크' 바람

입력
2022.10.17 16:5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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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 소비로 인플레이션 극복 방안 담아
사회 담론보다 '실용성' 출판 트렌드

소비단식 일기, 오늘은 짠테크 내일은 플렉스 표지 사진.

소비단식 일기, 오늘은 짠테크 내일은 플렉스 표지 사진.

요즘 서점가에서는 ‘경제적 생존’을 키워드로 한 자기계발서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유명 유튜버들이 ‘성공 욕망’을 부추기던 책들이 대세였지만, 지금은 ‘티끌 모아 태산’ ‘저축이 살길이다’를 주제로 한 서적이 인기다. 주식ㆍ부동산ㆍ코인ㆍ대체불가토큰(NFT) 시장이 사실상 붕괴하고 인플레이션으로 경제적 고통이 커지면서 나타난 변화다.

‘소비단식 일기’는 스타트업 마케터인 서박하(필명)씨가 의식주에 필요한 돈 외에 극단적으로 돈을 아끼는 ‘소비단식’ 생활을 쓴 기록이다. “내가 뭘 얼마나 산 거지, 미쳤어.” 월 500만 원 카드 청구서에 정신이 번쩍 든 저자는 소비단식을 통해 2년 만에 빚을 갚고 저축을 하는 알뜰족으로 거듭난다. 과소비를 부른 내면의 결핍과 불안을 이해하는 힐링 에세이 성격도 더했다. 지난 7월 말 출간 이후 1만 부가 팔릴 정도로 독자들의 호응이 크다.

작년까지 저축은 찬밥 취급을 받았지만, 상황이 변했다. '저축도 재미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오늘은 짠테크, 내일은 플렉스'는 출간 두 달여 만에 1만 부가 팔렸다. 저자인 재테크 칼럼니스트 김경필씨는 “100명이 시도해서 한 명이 성공하는 투자 재테크 대신, 100명 모두 성공하는 저축 재테크가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출판사 김영사 측은 “투자 열기가 아직 뜨거웠던 지난해 말에 책을 기획했는데 그사이 자산가치가 떨어지고 짠테크가 트렌드가 되면서 책의 내용과 현실이 맞아 떨어지게 됐다”고 했다.

365 갓생 일력, 짠테크로 생각보다 많이 모았습니다 책 표지 사진.

365 갓생 일력, 짠테크로 생각보다 많이 모았습니다 책 표지 사진.

‘짠테크로 생각보다 많이 모았습니다’는 언론인인 저자가 3년 만에 목돈 5,000만 원을 모은 비법을 소개한다. 책을 출간한 최은영 가디언 편집실장은 “지난 8월 출간했는데 초판본이 거의 다 팔렸다”며 “책을 준비하는 시점에도 비슷한 책들이 많이 나와 출간을 서둘렀다”고 했다. 젊은 독자층을 겨냥해 아예 달력 형식으로 펴낸 출판사도 있다. ‘365 갓생 일력, 매일 조금씩 부자가 되는 짠테크 프로젝트’는 날짜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택시비를 아낀다’ ‘로즈데이 장미꽃은 이모티콘으로 주자’ 등 회초리 같은 글귀를 담아 소비 의욕을 꺾는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무조건 돈 버는 부동산 투자 시크릿’ ‘미국 주식 투자’ 등 투자 열망을 부추기는 책들이 홍수를 이뤘지만 시들해졌다. 지금은 ‘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기’ ‘더 위험한 미래가 온다’ ‘대한민국 위기와 기회의 순간’ 등 제목만 봐도 ‘경제 위기’를 깨닫게 하는 책들이 서점 매대를 차지했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은 “코인이나 NFT를 다룬 책들도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트렌드도 움츠러들었다”며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보다 아껴서라도 경제적으로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시대여서 한동안은 짠테크 책이나 경제전망서가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주식 하락에 일반 투자자들이 긴장하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주식 하락에 일반 투자자들이 긴장하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전쟁 이후 극심한 가난을 겪은 베이비붐 세대(1960년대생)나 IMF 충격파로 마른 수건을 쥐어짜던 X세대(1980년대생)에게 근검절약은 익숙한 얘기다. 다만 지금 짠테크는 ‘요즘 애들’ 격인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를 겨냥했다는 게 특징이다. 자산시장이 한껏 달아올랐던 코로나19 시기 투자에 뛰어들었던 MZ세대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 왔기 때문.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짠테크 책의 인기가 “사회에 대한 얘기보다 '나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가'를 알려주는 책이 많이 팔리는 출판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고 했다.

짠테크 책을 보는 출판계의 시선은 엇갈린다. “출판계 역시 한때 욕망을 파는 분위기에 편승했다는 점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인플레이션과 저성장 시대를 현명히 이겨낼 조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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