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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히 퇴근해요"... 제빵공장 연인 당부에도 돌아오지 않은 카톡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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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히 퇴근해요"... 제빵공장 연인 당부에도 돌아오지 않은 카톡 메시지

입력
2022.10.18 04:30
수정
2022.10.18 10:57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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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 제빵공장 사망자 남자친구 카톡 보내
"밝은 성격에 투정 안 부려 예쁨 받던 고인"
"사고는 회사 책임, 재발 방지책 마련해야"

15일 평택 제빵공장 사망 노동자 A씨와 남자친구 B씨가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 사고 당시인 오전 5시쯤부터 A씨만 메시지를 보냈을 뿐, B씨의 답장은 없다(왼쪽 화면). 오른쪽 화면엔 17일 여행을 가기로 한 두 사람이 일정을 공유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오세운 기자

15일 평택 제빵공장 사망 노동자 A씨와 남자친구 B씨가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 사고 당시인 오전 5시쯤부터 A씨만 메시지를 보냈을 뿐, B씨의 답장은 없다(왼쪽 화면). 오른쪽 화면엔 17일 여행을 가기로 한 두 사람이 일정을 공유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오세운 기자

‘남은 시간 빠이팅(파이팅)하고 조시미(조심히) 퇴근해요’

‘퇴근했어?’

‘(왜 답이 없어?) 무슨 일 있어?’

17일 오전 경기 평택시의 한 장례식장. 이틀 전 새벽 평택 SPC 계열 제빵공장에서 일하다 샌드위치 소스를 배합하는 기계에 끼어 숨진 A(23)씨 빈소가 마련된 곳이다. 통곡 가득한 빈소에서 만난 A씨의 남자친구 B씨는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휴대폰의 카카오톡 화면 하나를 보여줬다. 15일 오전 6시 20분 사고 직전부터 오전 11시까지 연인과 나눈 대화였다. 질문은 가득했지만 아무런 답변도 돌아오지 않았다. 미수신을 나타내는 ‘1’ 표시만 떠 있을 뿐이다. B씨는 “이날 부산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항상 쫓기며 일해"... 못 이룬 부산 여행

둘은 이 공장에서 만났다. A씨는 재료 준비, B씨는 원료 정리 작업으로 맡은 일은 달랐지만 친하게 지냈다. 10개월 전 둘의 사이는 직장 동료에서 연인으로 발전했다. 원래 주간 근무를 하던 B씨는 여자친구에게 힘이 되고 싶어 2개월 전부터 야간근무를 자처했다. A씨는 힘든 야간작업에도 씩씩함을 잃지 않아 ‘까불이’로 불렸다. B씨는 “나이가 어린데도 열심히 일하고 투정을 부리지 않아 예쁨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사고 이틀 뒤인 이날은 모처럼 휴가를 내고 2박 3일 부산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A씨는 교통편, 숙박 등을 직접 다 예약하고 여행 코스까지 다 짜놓을 정도로 한껏 들떠 있었다고 한다. B씨는 “나도 여자친구도 부산을 가본 적이 없어 간절히 바라던 여행이었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사고 당일에도 두 사람은 함께 야간근무를 했다. 그는 오전 5시 먼저 퇴근하며 A씨에게 “천천히 일하라”고 당부했다. 야간에 일을 다 끝내놔야 주간 작업에 차질이 없어 늘 시간에 쫓겼다. B씨는 “가뜩이나 사고가 난 날엔 야간조 인원이 2, 3명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여자친구가 더 걱정됐는지 모른다. 그의 카톡 메시지엔 ‘안전’에 관한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한다. 하지만 연인은 퇴근(오전 8시)을 두 시간여 앞두고 참변을 피하지 못했다.

"여자친구 왜 죽어야 했나요"

17일 오전 경기 평택시 팽성읍 SPL 평택공장 앞에 마련된 A씨 분향소에서 노동자들이 조문하고 있다. 뉴스1

17일 오전 경기 평택시 팽성읍 SPL 평택공장 앞에 마련된 A씨 분향소에서 노동자들이 조문하고 있다. 뉴스1

B씨는 여자친구를 ‘소녀가장’으로 묘사한 언론 보도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극적 스토리만 부각되다보니 사고 원인과 재발 방지 대책이 오히려 묻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여자친구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20대 초반 사회초년생이었다”면서 “특성화고 조리학과를 졸업한 뒤 제빵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대학보다 취직을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B씨 역시 지금도 정확한 사고 원인을 몰라 답답하다. 다만, 여자친구의 실수로 사고가 났을 가능성에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명백한 회사 책임”이라며 “근무자가 기계에 빨려 들어가면 바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올 순 없겠지만 ○○이가 하늘에서라도 푹 쉬었으면 좋겠어요.”


김소희 기자
오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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