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907년 금융 공황으로 국가 존립을 걱정할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경기조절과 최종대부자 역할을 하는 중앙은행이 없었기 때문에 금융 공황이 발생했다는 인식하에 미국은 1913년 연방준비제도(Fed)를 설립했다. 그러나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이 닥쳤다. 미국 은행들이 Fed를 믿고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대출하는 등 방만하게 경영한 것이 대공황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처럼 안전을 도모할수록 오히려 위험도가 커지는 것을 펠츠만 효과(Peltzman Effect)라고 한다.
우리나라 쌀 산업은 현재 구조적 공급과잉 상황이다. 평년 수준 작황만 되더라도 매년 약 20만 톤의 쌀이 남아돈다. 작년에도 27만 톤의 쌀이 초과 생산됐고, 정부는 올해 37만 톤의 쌀을 사들여 시장에서 격리했다. 다만, 시장격리 조치가 재량 사항으로 규정돼 있어 정부의 시장격리 시기가 늦어졌고, 이로 인해 쌀값이 하락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인식하에 쌀 이외의 작물을 재배하도록 지원해 쌀 공급과잉을 해소하되, 생산량이 수요량보다 3% 많은 경우 등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시장격리를 의무화한다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19일 농해수위 상임위를 통과했다.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쌀을 재배하는 농가는 쌀 가격이나 판로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라지게 된다. 쌀 생산에 대한 강력한 안전망이 설치되는 것이다. 농가 입장에서는 당장 이득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안전망은 농가가 쌀을 재배하도록 유인하기 때문에 쌀 이외 작물 생산을 지원하는 생산조정 정책의 효과는 반감되고, 쌀 공급과잉 구조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쌀 공급과잉이 심화되면 쌀 시장격리에 막대한 재정이 소요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면 2030년에는 64만 톤의 쌀이 초과 생산되어, 1조4,000억 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래 농업 발전을 위한 투자가 감소하고, 전체 농가의 소득안정을 위한 공익직불금 재원 확보도 어려울 수 있다. 쌀 공급과잉에 대한 안전망 설치가 오히려 쌀 공급과잉을 부추겨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정부는 앞으로 전략작물직불제 도입, 가루쌀 산업 활성화 등 타작물 생산을 지원해 적정량의 쌀을 생산하고 쌀 소비 트렌드 변화에 맞춘 소비 촉진 방안을 마련하는 등 쌀 수급균형 정책을 마련해 쌀 시장을 안정화할 계획이다. 물론 기상 여건 등 작황에 따른 일시적 쌀 공급과잉으로 쌀값이 지나치게 하락할 경우에는 정부 개입으로 시장을 안정화할 필요가 있다. 다만, 정부 개입을 제도화해 쌀 공급과잉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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