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변호사 3만 명 시대라지만 수임료 때문에 억울한 시민의 ‘나홀로 소송’이 전체 민사사건의 70%다. 11년 로펌 경험을 쉽게 풀어내 일반 시민이 편하게 법원 문턱을 넘는 방법과 약자를 향한 법의 따뜻한 측면을 소개한다.
형사사건은 크게 '자백사건'과 '무죄사건(무죄를 다투는 사건)'으로 나뉜다.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하는 자백사건과 달리, 무죄사건은 여러모로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다.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재판부에 무죄선고를 요청하려면 검사가 치밀하게 쌓아놓은 증거기록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나홀로 소송' 방법을 다뤘지만, 나홀로 무죄를 다투는 건 권하고 싶지 않아서 이번 사례에는 변호사를 등장시켰다.
피고인 B는 아파트 분양사기로 기소됐다. 아파트 분양의사와 능력도 없이 피해자들로부터 분양대금을 받아 편취했다는 것이다. B에게는 동업자가 있었는데, B가 동업자 몰래 분양하고 돈을 받았다는 것도 쟁점이 됐다. 최태양 변호사는 검사의 증거기록을 검토했는데, B에게 불리한 증거로 꽉 짜여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B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10년도 더 전에 오래된 아파트의 리모델링 공사를 하면서 얻은 유치권으로 아파트를 점유·관리하다가 낙찰을 받아 소유권을 취득했고, 그 과정에서 동업자 자금을 투자받았으며, 동업자는 현장에 관리자를 두고 상황을 보고받았다. 잠시 자금이 막히기는 했지만, 순차적으로 등기를 이전했고, 현장에서 분양대행하던 사람들도 이를 모두 알고 있었다. 아파트는 10년이 넘는 B의 사업터전이었고, 끈기 있게 사업을 진행한 것인데, 웬일인지 관련자들 모두가 'B가 동업자 몰래 분양해서 분양대금을 받았고, 등기도 넘겨줄 능력이 없다'고 일치하여 진술했다. 삼인성호(三人成虎)였다.
최 변호사는 관련자들 전부를 법정에 세워 증인신문을 하면서 객관적 증거를 토대로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했다. B의 사업구조도 재판부에 충실하게 설명했다. 검사가 B에게 유리한 증거를 발견했음에도 법원에 제출하지 않은 것도 밝혀냈다. 재판부는 사건을 원점에서 볼 수 있게 되었고, 무죄를 선고했다. B의 주먹구구식 운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민사책임을 넘어서는 형사처벌 받을 범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피해자들은 등기가 늦어지자 불안한 마음에 B를 형사 고소했다. 분양대행업자들은 피해자들에게 받은 돈의 상당부분을 개인적으로 소비했는데 그 책임을 B에게 돌리려고 거짓 진술을 했다. 대기업 직원인 동업자는 민·형사로 사건이 복잡해지자 회사가 알게 될까 두려워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B가 억울하고 분통한 나머지 수사관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화를 내고, 의자를 발로 차며 나갔는데 이 모습을 보며 수사관은 B를 죄질 나쁜 범죄자로 단정했다. 수사관은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로, B에게 무죄가 선고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사건을 똘똘 말았다. 검사는 수사관이 잡은 방향에 동의했다.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B는 무고한 피고인이 되어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실체적 진실에 입각한 국가 형벌권의 실현을 위해 공소제기와 유지를 할 의무뿐만 아니라,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해야 할 의무를 진다. 따라서 검사가 수사 및 공판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발견했다면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이를 '검사의 객관의무'라고 한다(대법원 2002. 2. 22. 선고 2001다23447 판결). 그러나 무죄를 다투는 사건에서 검사는 마치 피해자의 대리인 같은 태도를 취하기도 하는데, 그 결과 민사소송의 원고와 피고처럼 검사와 피고인이 대립하기도 한다.
주의할 것은, 무죄를 다투는 형사재판에서도 유죄선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피고인은 끝까지 태도를 조심해야 한다. 무죄를 다투는 게 자칫 반성하지 않는 태도로 비쳐 중한 형을 선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죄를 다투지만, 물의를 일으키고 피해자에게 피해를 입힌 점에 대해서는 죄송하다'는 태도를 고수하면서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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