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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했는데… 시위하는 10대들 공격하는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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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했는데… 시위하는 10대들 공격하는 이란

입력
2022.10.21 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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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지도자 찬양 노래 거부했다가 경찰에 구타당해
이란 보안군, 시위 조직 막으려 학교 급습·학생 체포
"체포된 시위대 평균 연령 15세"… 11세 소년도 사망

이달 13일 이란 북서부 알드다빌에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라는 경찰 명령을 거부했다가 학교에서 경찰에게 구타당해 이튿날 숨진 16세 고등학생 아스라 파나히. 이란계 미국 언론인 마시 알리네자드 트위터

이달 13일 이란 북서부 알드다빌에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라는 경찰 명령을 거부했다가 학교에서 경찰에게 구타당해 이튿날 숨진 16세 고등학생 아스라 파나히. 이란계 미국 언론인 마시 알리네자드 트위터

한 달 넘게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이란에서 어린이·청소년 사상자가 늘고 있다. 10대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하다 보니 가장 잔혹하게 탄압받는 이들도 10대다. 보안군은 학교와 학생을 불시 검문하고, 경찰은 시위에 참여한 미성년자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있다. 국가 권력이 가장 보호해야 할 미래 세대를 도리어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하메네이 찬양 노래 거부… 경찰 구타에 또 여학생 사망

19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최근 이란 북서부 아르다빌에서 10대 여학생이 경찰에게 구타당해 사망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희생자는 아제르바이잔 소수민족 출신 아스라 파나히, 나이는 고작 열다섯 살이었다. 경찰은 시위 현장도 아닌, 학교 교실에서 폭력을 휘둘렀다.

이달 13일 파나히가 다니던 샤헤드고등학교에 갑자기 경찰과 보안군이 찾아와 학생들을 ‘친정부 행사’에 강제 동원했다. 그러고는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라고 명령했다. 행사가 시작되자 학생들은 노래 대신 “여성, 생명, 자유” “독재자에게 죽음을”을 외치기 시작했고, 사복 차림 보안군이 곧바로 현장을 진압했다.

이후 학생들은 교실로 돌아갔지만, 보안군은 교실까지 쫓아와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학생 7명이 다쳤고, 10명이 체포됐다. 교실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파나히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튿날 끝내 눈을 감았다.

파나히 사망 소식에 격분한 아르다빌 주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시위대가 보안군의 폭력 진압에 돌을 던지며 저항해 양측 간 물리적 충돌도 빚어졌다. 아르다빌 출신 ‘이란 축구 영웅’ 알리 다에이는 “내 고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며 “이란 당국은 진실을 말하라”고 규탄했다.

이란 정부는 경찰 폭행 사실을 부인했다. 국영 IRNA통신은 파나히의 삼촌을 인터뷰해 “파나히가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소셜미디어에는 파나히가 12세 때 수영대회에서 3위에 입상했던 자료가 올라왔다. 파나히 가족들이 정부 압박에 사실과 다른 증언을 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지난달 16일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갔던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주검으로 돌아왔을 때도, 16세 여고생 니카 샤카라미와 사리나 에스마일자데, 아프가니스탄 국적 17세 세타레 타지크가 숨졌을 때도, 이란 정부는 가혹 행위를 부인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난달 20~30일 열흘 사이에만 미성년자 23명이 숨진 것으로 파악했다. 그중에는 보안군이 쏜 실탄에 맞은 열한 살짜리 소년도 있다. 이란 인권운동가 통신(HRANA)이 이란 시위 한 달간 집계한 사망자 240명 중 미성년자는 32명에 이른다. 인터넷과 언론이 통제되는 탓에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희생자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학교 급습·수용소 구금…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가혹 행위

17일 튀르키예 수도 이스탄불에 있는 이란 영사관 밖에서 이란 여성들이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하고 있다. 이스탄불=AP 뉴시스

17일 튀르키예 수도 이스탄불에 있는 이란 영사관 밖에서 이란 여성들이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하고 있다. 이스탄불=AP 뉴시스

이란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10대를 겨냥한 선제적 조치에도 착수했다. 독일 도이체벨레(DW)에 따르면 이란 경찰과 보안군이 지난주부터 각급 학교들을 불시에 급습하고 있다. 학생들이 모여서 시위를 조직할 가능성을 원천부터 차단하려는 의도다. 사복 경찰이 갑자기 교실에 들이닥쳐 학생을 끌고 가거나 심지어 학교에 최루탄을 쏘기도 했다. 학생들을 지키려 했던 교장과 교사들도 함께 체포됐다.

시위를 하다가 붙잡힌 청소년들은 이른바 ‘심리센터’로 보내진다. 유세프 누리 이란 교육장관은 “학생들을 개혁하고 반사회적 행동을 없애려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상은 심리 교육을 빙자한 ‘불법 구금’이다. 이란 인권변호사 호세이니 라이시는 “아이들이 갇힌 심리센터는 소년원, 강제수용소 같은 곳”이라며 “시설 내 사회복지사들은 아이들을 돌보는 대신 세뇌하고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얼마나 많은 어린이·청소년들이 구금돼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10대의 시위 참여율이 높기 때문에 향후 더 많은 아이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알리 파다비 이란혁명수비대 부사령관은 “최근 시위로 체포된 사람들 평균 나이가 15세”라며 “교육 태만 때문”이라고 IRNA통신에 말했다.

국제앰네스티 이란 활동가 나심 파파얀니는 “이란 정부가 민중 봉기를 잔혹하게 탄압하는 것은 어린이 시위대에 대한 전면적 공격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도 “수많은 학교가 급습당하고, 아이들과 교장들이 끌려갔다”며 “이란 보안군의 폭력적 대응과 자의적 체포, 아동 살해와 구금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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