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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에 '80대 노인'의 삶을 살 아들을 보면 막막합니다"

입력
2022.10.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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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1명, 발달장애를 답하다]
발달장애 가족 릴레이 인터뷰③
인천의 19세 자폐아 엄마 김현미씨

편집자주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1,071명의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광역지자체별 발달장애 인프라의 실태를 분석해 인터랙티브와 12건의 기사로 찾아갔습니다. 기사에 다 담지 못한 설문 응답자들의 개별 인터뷰를 매주 토, 일 게재합니다. 생생하고, 아픈 이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세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지난 5월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지난 5월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아이를 낳고 나서, 아니 발달장애 진단을 받고서도 참 무지한 엄마였어요. 자폐성 장애가 병처럼 고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인천에서 중증 자폐성 장애를 가진 19살 아들을 키우는 엄마 김현미(49)씨의 말이다. 아들의 생후 24개월에 병원에서 관련 진단을 받은 뒤 김씨의 삶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충남에서 살던 김씨는 아들의 장애를 '질병'이라고 여겨 치료를 위해 인천으로 이사했다.

어린이집을 보내는 일도 쉽지 않았다. 시(市)의 경계를 넘어 다른 지역에 있는 어린이집에 진학해야 했고, 복지관, 사설 치료실 등 재활시설을 한번 가보려 해도 수년을 기다렸다. 또 이런 기관과 병원, 학교로 아들을 데려가고 오는 일은 모두 김씨의 몫이었다.

차마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세월이 지나 이제 그의 아들은 내년이면 성인, 즉 어른이 된다. 어른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지만 김씨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막막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보통 지겨운 고등학교 과정, 특히 고3을 거쳐 스무 살이 되면 얼마나 많은 꿈들을 꿔요. 그런데 우리 아이는 꿈꿀 거리도 없어요. 갈 데도 없고. 아무런 계획도 없어요."

자녀가 어른이 되는 일은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발달장애인 가족은 예외다. 김씨를 비롯해 한국일보가 만난 발달장애 가족들은 자녀가 성인이 되는 일이 두렵다고 말했다. 학령기에는 학교에 가거나 체험학습 등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성인이 되면 제도권 서비스가 대부분 종료되면서 그야말로 365일 집에서 보내는 신세가 된다는 이야기였다.

성인 되면 어디로… 보호센터는 대기만 '5년'

서울의 한 발달장애인 교육센터의 수업 풍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의 한 발달장애인 교육센터의 수업 풍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체 발달장애 인구수에 비교했을 때 돌봄이든 직업 교육이든 받을 수 있는 사람은 10% 정도뿐이에요. 나머지 90%는 스무 살부터는 그냥 집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인 거죠."

김씨의 한탄은 여러 수치로도 증명된다. 지난달 발표된 2021년 발달장애인 실태조사에서 전문대 이상 재학·졸업자는 단 6.2%에 불과했고, 취업률(15세 이상) 역시 20.3%에 그쳤다.

성인 발달장애인의 숫자는 18만 명. 그러나 만 18세 이상 65세 미만의 성인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시행 중인 주간활동서비스는 2022년 보건복지부 예산 기준 대상자가 1만 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주간활동서비스를 받을 경우 심야와 주말에도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지원 시간이 줄어든다는 점 때문에 이용을 꺼리기도 한다.

당장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일인 11월 17일부터 김씨의 아들은 갈 곳이 없다. 지역의 주간보호센터를 알아봤지만 무려 5년을 대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 김씨는 "아들이 등교하는 뒷모습을 보면서 '수능일까지만 학교에 가고 이후로는 함께 집게 들고 동네 공원 다니면서 쓰레기라도 줍자'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지금도 동네에서 저와 아들은 눈에 띄는 사람들인데, 저 큰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서 휴지를 줍고 있으면 더 눈에 보이겠네 싶어 막막하더라"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의 삶을 '스무 살인데 80세 같은 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주변에 발달장애인 아이들은 나이가 25세, 이렇게 되면 전부 다 배가 나온다"라면서 "갈 곳이 없어서 다 집에서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니까"라고 설명했다.

그간 아들의 재활 치료에 ‘억 소리 나는’ 돈을 쓴 김씨는 더 이상 비용을 들여 뒷바라지할 여력도 없다고 했다.

김씨는 이렇게 호소했다. "우리 모습이 그간 뉴스에도 나오고 다큐멘터리로도 다뤄지고 다들 봤잖아요. 다른 요구가 아니거든요. 하루가 24시간이니까 잠자는 시간 빼고 나머지 시간에 갈 곳과 할 것이 있으면 된다는 겁니다."

▶인터랙티브 바로가기: 클릭하시면 1,071명 설문조사 결과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이 되지 않으면 주소(interactive.hankookilbo.com/v/disability/)를 복사해서 검색창에 입력해주세요.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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