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시장의 돈 흐름이 빠르게 경색되고 있다.
레고랜드 테마파크의 자금난이 심각해지자, 지급을 보증했던 강원도가 지난 4일 돌연 레고랜드 자산유동화어음(ABCP)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것이 그 시작이다. 기준금리 인상과 한국전력의 대규모 회사채 발행 등으로 국내 채권시장에 불안감이 커지던 시기에 터진 악재였다. 하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은 모니터링 강화만 되뇌며 별 대책을 내놓지 않자, 불안감이 빠르게 증폭돼 한 달 전 연 3~4%였던 ABCP 금리가 7%까지 치솟는 등 채권시장에 위기가 불거진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20일 뒤늦게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1조6,000억 원을 풀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정도 대책으로는 급한 불도 끄기 어렵다는 분석이 확산되면서, 21일에도 채권 금리가 계속 오르는 등 불안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레고랜드 같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은행과 제2 금융권 대출 잔액이 112조 원(6월 기준)이 넘고, 각종 개발사업과 관련해 증권사가 발행한 유동화증권까지 포함하면 152조 원이나 된다. 이 중 올해 하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ABCP만 34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금리 인상과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하는 상황이라 신규 사채를 발행해 만기 사채를 상환하는 차환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우량 회사채 금리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발생 때 한국은행이 무제한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비은행 금융회사 대출 등 과감한 대책을 통해 위기 조기 진화에 큰 역할을 했다. 지금은 통화 긴축정책을 펴고 있어, 한은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 채권시장 위기를 조기에 진화하지 못하면 긴축정책도 아무 소용없다. 채권시장의 위기가 주식시장이나 실물 경제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와 금융당국은 비상한 각오로 시장이 놀랄 만한 과감한 대책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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