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령 내린 지 사흘 만에 "전원 철수" 명령
우크라 본토 발전 시설 집중 공격
100만여 가구 정전...'전쟁범죄' 비난 높아져
러시아가 이달 초 강제 병합한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지역 주민들에게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이유로 긴급 대피령을 내렸다. 남부 지역에서도 우크라이나군에 밀려 고전하고 있는 전황이 반영된 결정이다. 다만 러시아군은 패퇴하면서도 우크라이나 본토에 있는 발전소를 골라 때리는 '전쟁 범죄' 성격이 짙은 반격을 시도했다. 이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전역은 100만여 가구가 어둠과 추위 속에 내몰렸다.
우크라 대대적 공세에 러 "민간인 모두 떠나라"
러시아가 임명한 헤르손 점령지 행정부는 22일(현지시간) "전선의 긴박한 상황, 대규모 포격 위험 증가, 테러 공격 위협으로 헤르손의 모든 민간인은 즉시 도시를 떠나 드니프로강 동쪽으로 떠나야 한다"고 밝혔다. 모든 산하 부서·부처에도 이날 중으로 드니프로강을 건너라고 명령했다. 지난 19일 헤르손 주민 6만 명을 대피시킬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남은 주민에게도 긴급 대피할 것을 명령한 것이다. 이는 드니프로강을 가로지르는 러시아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한 우크라이나군의 공세가 거세지면서다.
러시아군은 주민 수만 명을 대피시키는 동시에 필사적으로 헤르손을 요새화하는 데 나서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군이 처음 점령한 헤르손은 드니프로강 하구에 위치한 크림반도의 관문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포기할 수 없는 요충지다. 우크라이나군 작전 참모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징병한 군인 2,000명을 헤르손 인근에 배치했다. 우크라이나군의 대대적 공세에 직면해 배수진을 친 셈이다.
다만 우크라이나군의 공세에 러시아군이 조금씩 밀리는 등 전황은 러시아군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세르게이 수로비킨 러시아 합동군 총사령관도 최근 이 지역에서 러시아군의 고전을 처음 인정했다.
100만여 가구 정전 "어둠과 추위가 오고 있다"
러시아군의 반격도 이어지고 있다. 전장에서의 공격이 아닌 우크라이나의 발전소 등 기반시설을 파괴하면서다. 키릴로 테모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차장은 이날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우크라이나 전역의 약 100만 가구 이상에 전기가 끊겼다"고 밝혔다. 지난 10일부터 기반시설을 노린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화력발전소의 최소 절반이 파괴되고, 전체 발전소의 40%가 멈추어 섰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혹한기를 앞두고 전기와 난방, 물 등을 끊어 우크라이나인들을 고통에 몰아넣겠다는 의도다.
공습은 러시아 접경 지역뿐 아니라 전방위에 걸쳐 이뤄졌다. 폴란드 국경과 불과 90㎞가량 떨어진 우크라이나 북서부 루츠크시의 이호르 폴란드추크 시장은 "에너지 시설이 완전히 파괴됐다"며 "현재로서는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키라 루딕 우크라이나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완전한 어둠과 추위가 오고 있다"고 썼다.
크림대교 폭발 이후 노골적으로 민간인을 겨냥한 러시아의 보복성 공격에 대해 전쟁 범죄라는 비판이 잇따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주요 기반시설에 대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공격으로 전형적인 테러리스트 전술"이라고 러시아를 비난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군의 무차별 공습을 두려워하기보단 오히려 분노하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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