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 행사 없이 사내 게시판에 회장 취임 소식 알려
8년간 사실상 총수 역할...사법리스크로 승진 늦춰져
27일 삼성그룹의 세 번째 회장에 취임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승진' 여부는 국내외 재계의 오랜 관심사였다. 고(故) 이건희 회장이 2014년 병상에 누운 후로 아들인 그가 사실상 삼성그룹의 총수 역할을 수행해왔기 때문이다. 2016년 처음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고,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삼성그룹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되자 그가 조만간 삼성의 회장으로 승진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렸다. 2020년 이건희 회장이 별세하면서 이 부회장의 회장 취임은 시간 문제로 보였다. 고 이건희 회장은 이병철 선대 회장이 타개한 지 20일 정도 지난 1987년 12월 1일 회장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은 그로부터도 2년이 지나서야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가장 큰 걸림돌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터진 '사법 리스크'였다.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리며 두 차례 수감되는 고초를 겪었고,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재판 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회장은 2017년 국정농단 관련 재판에서 "병 중인 이건희 회장이 마지막 삼성그룹 회장 타이틀을 가진 분일 것"이라며 "앞으로 삼성그룹 회장 타이틀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회장의 공식 직함은 삼성그룹이 아니라 삼성전자의 회장이다. 일부에선 이런 이유로 그가 네이버와 같은 정보통신(IT) 기업 창업자들처럼 '이사회 의장'을 맡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미 실질적 리더 역할..."글로벌 위기 상황 고려" 해석도
그러나 이 부회장은 오히려 예상보다 빨리 회장 자리에 오르는 선택을 했다. 그동안 이재용 회장 취임 시점을 두고 삼성전자 창립기념일인 다음 달 1일부터 내년 3월 정기주주총회까지 다양한 관측이 나왔었다. 결과적으로 예상 시나리오 중 가장 이른 때에 취임한 셈이다.
이를 두고 삼성전자의 절박한 상황을 반영한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기 침체와 미·중 반도체 경제 전쟁 등의 여파로 삼성전자 경영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시점인 만큼 회장 승진을 통해 책임감을 갖고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그룹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을 직함에 확실히 반영한 것"이라며 "대내외 활동을 하는 데 있어 좀 더 힘을 얻을 수 있고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재용 회장이 별도의 취임 행사 없이 '조용한' 회장 승진을 택한 것 또한 같은 맥락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 회장은 취임식이나 취임사 없이 이날 오전 9시 55분쯤 사내게시판을 통해 직원들에게 취임 소식만 전했다. 고 이건희 회장이 1987년 12월 1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취임식을 갖고 '제2의 창업'을 선언한 것과 비교되는 행보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계열사를 두루 다니며 임직원과 소통하고, 회사별 미래 사업을 점검하는 등 오랜 기간 삼성의 총수로서 활동해온 데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고조 등 경제 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거창한 취임 행사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글로벌 IT 기업의 사례를 봐도 대부분 별도 행사 없이 임직원에게 이메일을 통해 취임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내에서도 2020년 10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별도 행사 없이 사내 방송을 통해 글로벌 구성원에게 영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회장 취임을 알렸고, 구광모 LG 회장도 이사회 인사말로 취임사를 갈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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