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박석원의 정치행간’은 의회와 정당, 청와대 등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이슈를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정치적 갈등과 타협, 새로운 현상 뒤에 숨은 의미와 맥락을 훑으며 행간 채우기를 시도합니다.
윤석열 정부 검찰의 야권을 향한 수사가 급격히 빨라지면서 더불어민주당은 말 그대로 ‘실전(實戰)’ 상황에 돌입했다.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전격 구속된 뒤 이틀 만인 24일 민주당 중앙당 압수수색이 시도됐고, 또 한 명의 최측근인 정진상 당대표 정무조정실장마저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출국금지됐다. 정 실장에 대해서도 곧 구속영장이 청구될 것이란 얘기가 파다하다. 두 핵심 측근에 이어 검찰의 칼날이 이 대표로 향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민주당으로선 ‘대선 승자 측이 정권교체 후 5개월 만에 패자에게 칼을 휘두르는 탄압’으로 보고 있다. 특히 사정드라이브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등 문재인 정권 수사와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급박하게 진행되는 검찰발 몰아치기에 의원들은 분노와 패닉, 일부는 무력감까지 느끼는 분위기다.
“윤석열 정권, 노골적인 정치보복” 격앙된 민주당
노웅래 민주연구원장은 26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김용 부원장과 관련한 압수수색에 대해 “검찰이 출근시간 당직자들과 섞여 슬그머니 8층에 올라왔다”며 “윤석열 검찰이 물불을 안 가리고 야당을 때려잡고 있다”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노 원장은 “김 부원장이 11일 임명되고 2주 됐는데 회의 3번 나왔다. 공용컴퓨터에 뭐가 있겠느냐”며 “아무것도 없는데 겁주고 망신주려는 의도”라고 격앙됐다. 민주당으로선 검찰이 가져간 당의 상설특위 명단 등 4개의 파일이 어떻게 활용될지 의문을 품고 있다.
당 지도부는 이 대표를 옥죄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대비 중이다. 내밀한 플랜은 별도로 이 대표 측 핵심그룹인 정성호 의원 등 ‘7인회’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전언이다. 당 소식통은 “사정정국의 속도가 너무 빨라져 당대표 측에 플랜B부터 Z까지 예상가능한 모든 사례 분석과 시나리오가 급히 모이고 있다”며 “심지어 대선자금으로 엮을 것을 대비해 과거 이회창 사례나 이를 벤치마킹했던 황교안 사례까지 보고됐다”고 전했다. 이는 옛 대검 중수부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한창이던 2003년 12월 15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검찰의 소환통보가 없었음에도 자진출석해 “불법 대선자금은 내가 시켜서 한 일”이라고 치고 나선 것을 말한다. ‘회계담당 실무자-의원-중진’ 순으로 조사를 진행해 마지막에 이 총재를 소환하려던 검찰의 허를 찌른 경우다. 결과적으로 이 전 총재는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친(親)이재명계 의원은 “사실상 검찰 수사지휘를 윤 대통령이 직접 한다고 봐야 한다”며 “다음 단계는 정진상 실장을 구속하는 경우다. 당내 큰 기조는 아직 김용, 정진상 두 사람을 신뢰하면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더라도 이 대표는 개입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이 자신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검찰 주장이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구라고 입장을 밝힌 상태다. 당으로선 정 실장의 사무실 위치를 감안해 검찰이 국회 본청에 있는 당대표실을 압수수색하는 초유의 상황도 경계하고 있다. 여러 의혹 중 이 대표 주변이 대선자금과 관련한 유탄을 맞을 경우엔 “0.74% 차이 초박빙으로 이긴 윤석열 캠프는 왜 조사를 안 하냐”는 비판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문재인 정권 동시 겨냥에 당내 균열 불가능”
당내에선 단일대오로 정권에 대항해야 한다는 데 거의 이론이 없다. 다만 물밑에선 유 전 본부장의 진술을 뒷받침할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 나오거나 검찰의 이 대표 기소, 공소장에 구체적 혐의가 적시되는 상황 등이 닥칠 경우 대표직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도 오가는 실정이다. 김해영 전 의원처럼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오라”, “특정인을 지키기 위한 단일대오에 동의할 수 없다”는 식의 공개적 주장은 없지만 ‘비대위 체제’를 입에 올리는 기류는 비(非)명 쪽을 중심으로 확인된다.
계파색이 옅은 한 의원은 “검찰의 기세를 보면 ‘이재명 죽이기’ 작업이 연말까지 2달 내에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본다”며 “이 정권이 사정드라이브 실적을 내년 설 연휴 밥상에 올려 여론몰이로 대표직을 사퇴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장은 우상호 의원이 다시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 비교적 많더라”라고 전했다. 한쪽에선 미국에 있는 이낙연 전 대표와 정계은퇴를 선언한 김부겸 전 총리의 이름이 부쩍 거론되고 있다. 또 다른 중립성향 의원은 “금기어지만 이 대표가 사퇴하는 지경에 이르면 친명, 친문 모두 무너진다고 본다”며 “당권주자로 보더라도 ’친문 적자’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수감 중이고 97그룹도 사실상 평가가 끝났다. 민주당 권력이 원점에서 춘추전국시대로 돌입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범친명계로 분류되는 의원도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 의원은 “친명·친문 간 균열이 드러나면 정권의 노림수에 빠져드는 것”이라면서도 “김해영, 전재수, 조응천 이런 사람들은 소신파 이미지가 있는데 이들이 이 대표를 비판한 바 있어 엄중한 상황에 아주 곤혹스럽다. 정진상 실장이 구속될 경우 비대위를 얘기하는 일부 분위기는 더 강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포스트 이재명’ 대상으로 본인들은 함구하는 가운데 홍영표, 전해철 등 기존 친문주자나 ‘김근태 계승’을 이유로 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 등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당 관계자는 “대선후보 경선 막판 서울선거인단에서 이재명 대표를 이긴 이낙연 전 대표만 해도 미국에 있지만 최근까지도 당시 전국조직을 관리 중이다. 또 지난 전당대회 때 이재명 후보의 출마로 당대표 도전을 포기했던 우원식 의원이 ‘친명’ 측 지원을 받아 나설 수 있다”면서 “당이 단합해 위기를 넘겨야겠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게 당연한 상식”이라고 바닥 분위기를 전했다.
일각에선 이 대표 사퇴 후 비대위론도
물론 이 대표의 사퇴를 거론하는 건 현 사정정국의 성격상 가당치 않다는 의견이 다수다. 정권이 야당의 두 진영을 동시에 겨냥하는 총체적 정치보복 국면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이 대표는 ‘부패’, 문재인 정권은 서해 사건, 탈북어민 강제북송 등 ‘친북 국기문란’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데 따른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어서다. 친문 진영 의원은 “이 대표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대여투쟁 외에 다른 선택이 불가능하다”며 “이 대표의 여러 의혹도 있지만 서해 사건으로 문재인 정부 국방장관과 해경청장이 구속된 비상국면을 분리대응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전 정권을 용공으로 몰고, 대통령이 종북 주사파를 말하고, 태극기집회가 맞물려 돌아간다. 다들 답답하고 걱정스럽지만 단일대오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며 “비대위로 넘어갈 상황이 온다면 그건 그때 가서 대비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친명 좌장인 정성호 의원은 현 위기를 돌파할 것으로 보면서 “(이 대표 퇴진론에 대한) 의원 소수의 비판보다 당원 다수와 민심이 중요하다”며 “대선패배 4~5개월 지난 정당이 30% 넘는 지지율을 유지한 경우는 87년 민주화 이후 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내년 초가 되면 총선을 향한 시계가 빨라진다는 점이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국회의원들은 국민보다 여론에 더 민감한데 빅데이터 분석상 ‘정치검찰’ ‘검찰조작’ 같은 연관검색어가 민주당 의도만큼 부각되진 않고 있다”며 “사태가 장기화하고 여론이 불리해지면 당내 다른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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