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변호사 3만 명 시대라지만 수임료 때문에 억울한 시민의 ‘나홀로 소송’이 전체 민사사건의 70%다. 11년 로펌 경험을 쉽게 풀어내 일반 시민이 편하게 법원 문턱을 넘는 방법과 약자를 향한 법의 따뜻한 측면을 소개한다.
전편에서 삼인성호(三人成虎)가 되어 무고하게 형사 법정에 선 피고인 B에 대해 이야기했다. 피해자, 동업자, 분양대행업자의 거짓진술과 B의 불같은 성격과 수사관의 정의실현 의지가 절묘하게 결합해 B는 분양사기범이 돼 판사 앞에 섰다.
상황을 앞으로 돌려서, B가 수사관 질문에 화를 내며 의자를 발로 차던 순간으로 돌아가 보자. 수사관은 죄질 나쁜 범죄자가 찔리는 게 있어 그런다고 확신했고, 확신에 기초해 수사를 진행했다. 수사의 객관적 공백은 관련자 진술을 모으고 수사보고서에 의견을 작성하면서 연결시켰다. 결국 검사의 구속영장 청구에 이르렀고 B는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때에야 변호인을 선임했다. B는 간신히 구속을 면해 불구속 재판을 받으며 무죄선고를 받기는 했지만, 불같은 성격 탓에 재판 과정에서도 최 변호사와 종종 충돌했고, 최 변호사는 사임하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억눌러야 했다.
우리 형법이 범죄로 처벌하는 구체적 죄명과 구성요건을 규정하는 '형법 각칙'은 총 42개 장(章)으로 나뉘어 있다. △내란, 외환죄로 시작해서 뇌물, 범인도피, 위증, 증거인멸, 무고죄 같은 '국가적 법익'에 관한 죄 △방화, 문서위조, 마약, 도박죄 같은 '사회적 법익'에 관한 죄 △살인, 상해, 폭행, 강간, 강제추행, 명예훼손, 절도, 강도, 사기, 횡령, 배임 같은 '개인적 법익'에 관한 죄로 크게 3가지 종류다.
누군가 위 범죄구성요건에 해당되는 행위를 했을 때, 대부분 피해자의 고소 또는 이를 목격한 제3자의 고발로 수사가 시작된다. 수사관은 고소인 또는 고발인을 먼저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피의자를 신문하기 때문에(재판단계에서는 '피고인', 수사단계에서는 '피의자'라고 한다) 일정한 선입견이 작용할 여지가 많다. 피해자는 피해사실 위주로 증거를 제출하면서 철저한 수사와 엄벌을 요청하고, 목격자는 자신이 경험한 사실만 진술하므로 더욱 그렇다.
따라서 B는 수사관이 피해자, 동업자, 분양대행업자의 말만 듣고 자신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처럼 느껴졌더라도 분한 마음은 일단 접어둬야 했다. 수사관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생각은 하지 않고 화부터 내면 의심이 든다. 그러나 B는 유치권 현장에서 오랜 기간 험한 일을 하다 보니 차분히 생각하고 설명하는 능력이 부족해졌고, 부당한 일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목소리를 높이고 상대를 제압하는 일에 익숙해져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만약 B가 자신의 사업구조와 현장상황을 충분히 설명하면서, 수사관의 선입견을 풀어줬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예컨대 동업자가 월급을 주고 고용한 현장관리자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요청해 △동업자가 모든 상황을 알고 있다는 사실 △개인사업으로 오래된 아파트의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개인 돈과 사채까지 투입하며 10년 이상 유치권현장을 관리한 사실을 소명하고 △분양대행업자들이 피해자의 돈을 중간에서 착복하고 그 책임을 B에게 떠넘기려 거짓 진술했다는 점을 밝혀냈다면 구속영장 청구에 이르지도 않고 불기소처분을 받을 수도 있었다.
수사관이 의심을 풀어줄 새로운 사실, 새로운 관점과 그에 맞는 증거를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피의자의 몫이다. 대검찰청 검찰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전체사건 대비 검찰의 불기소율이 2020년 기준 58.3%다. 물론 그 안에는 혐의 없음뿐 아니라 기소유예, 공소권 없음, 기소중지 등도 포함되지만 상당수 사건이 검찰수사 결과 기소되지 않고 종결되는 것이다.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은 명백히 구별되고,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는 것만큼이나 무고한 피고인이 생기지 않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수사를 받게 되었다면 피해자, 목격자의 진술과 증거로 형성된 수사관의 의심을 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만, 눈에 보이는 명백하고 확실한 증거가 있음에도 범행을 부인한다면 그로 인해 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그때는 신속히 자백하고 반성하는 것이 가장 좋다. 증거의 가치와 범행과 관련된 의미, 법리적으로 무죄를 다툴 수 있는 사건인지에 대해서는 가급적 변호사의 조언을 들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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