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식 생활로 예법 중심에서 밀려났지만
동아시아 2,000년에 자리 잡은 절 예절
남녀의 절 방식 차이도 사라져야 할 예법
오늘날 절이란, 설날이나 장례식장 또는 결혼식 폐백 때나 하는 정도가 거의 전부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외박하는 외출에도 어른들께 절을 하는 게 당연시되었다. 물론 다녀와서도 절을 올려야 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와 '잘 다녀왔습니다'를 절과 함께 여쭈었던 것이다. 누가 군대라도 갔다 올라치면 군복을 입고 마당에서 '절 받으십시오'라고 외치며, 큰절을 올리는 모습은 아직도 내게는 깊은 인상으로 박혀 있다. 또 결혼에 앞서 함을 받거나 할 때도 절은 빠지지 않는 최고의 예법이었다.
예법의 중심에 있던 절이 약해지는 것은 좌식문화가 입식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입식에서는 앉아 있는 대상의 위치가 높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을 바닥에 밀착하는 절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절인데도 불교에서는 양손을 벌리고 이마를 바닥에 대는 반면, 유교는 손바닥을 교차해서 손등에 이마를 대는 방식을 사용한다. 즉 비슷한 듯하지만,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불교 절과 유교 절 중 어떤 게 맞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왜냐하면 절은 불교를 타고 동아시아로 전래한 외래문화이기 때문이다. 불교가 동아시아에서 2,000년을 함께하다 보니 혼란을 초래했을 뿐, 유교의 절은 '원형의 변형'일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있는 셈이다.
절은 인도의 오체투지(五體投地) 예법에서 비롯된다. 오체투지란, 신체의 다섯 군데인 두 손과 두 무릎 그리고 정수리를 땅에 대는 것으로 상대방에 대한 최고의 존중을 나타낸다. 5세기 고구려 고분벽화인 장천 1호분의 '예불도'를 보면, 중앙의 불상을 향해 절하는 분들이 목을 심하게 꺾고 있는 모습이 확인된다. 오체투지의 '정수리'라는 부분에 꽂혀 원산폭격 같은 자세가 나오는 것이다.
이런 절하는 방식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후 온돌과 좌식문화가 일반화되면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 변모한다. 즉 정수리가 이마로 대체되는 것이다. 정수리든 이마든 머리를 땅에 댄다는 것은 '상대와 비교될 수 없다'는 깊은 존숭의 의미다. 마치 폴더식으로 인사하는 것이나, 일본의 '도게자'(土下座)를 하는 것 같은 다소 과장된 형태라고나 할까?!
인도의 오체투지는 서쪽으로는 이슬람에도 수용된다. 해서 오늘날까지 무슬림들은 하루에 5번 메카의 카바신전을 향해 절을 하는 것이다.
머리가 땅에 닿아야 한다는 것은 교차한 손등에 절을 하는 유교 절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패해 청 태종에게 절을 할 때 이마가 찢어지는 것 역시 이마를 땅에 댔기 때문이다. 또 '황비홍' 같은 청나라 배경의 영화를 봐도 잘못한 사람이 머리를 바닥에 부딪히며 사죄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손등에 이마를 대는 유교 절은 생각보다 오랜 전통이 아님을 알게 된다.
어떤 분들은 절할 때 손을 교차하는 방식으로 남자는 왼손을 오른손 위에 올리고, 여자는 반대라고 한다. 또 상갓집에서 절할 때는 이것이 다시 반대가 된다고도 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는 허공에 수를 놓는 것처럼 모두가 불가능한 주장일 뿐이다. 또 속칭 '여자 절'이라고 하는 여성이 주저앉으며 양손을 높게 올리는 방식 역시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예불도'에는 뒤쪽 여성도 앞의 남자와 같은 절을 하고 있지 않은가?! 여자 절은 조선 후기의 여성 차별이 만들어낸 한 단면으로 반드시 사라져야 할 변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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