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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분열, 혐오를 낳는 '정서적 공감'을 경계하라

입력
2022.10.28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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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 가천대 교수 '공감의 반경'

정서적 공감은 강렬하지만 전파 범위가 짧고 지속력도 약하다. 2015년 전 세계에 난민 문제의 비극을 알린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이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 가족과 함께 그리스로 피난 가다 난파돼 익사한 이 사진에 국제사회가 눈물을 흘렸다. 거기까지였다. 잠시 난민을 향해 빗장을 여는 듯했던 국가들은 슬픔이 가신 후 문을 더 굳게 걸어 잠갔다. 연합뉴스

정서적 공감은 강렬하지만 전파 범위가 짧고 지속력도 약하다. 2015년 전 세계에 난민 문제의 비극을 알린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이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 가족과 함께 그리스로 피난 가다 난파돼 익사한 이 사진에 국제사회가 눈물을 흘렸다. 거기까지였다. 잠시 난민을 향해 빗장을 여는 듯했던 국가들은 슬픔이 가신 후 문을 더 굳게 걸어 잠갔다. 연합뉴스

서로 험한 말로 싸우는 보수ㆍ진보 지지자가 화해하려면? 귀여운 반려견 이야기를 하면 된다. 상대방이 나와 같은 보통 사람이라는 걸 깨달으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이들이 서로 싸우는 데는 타인에 대한 공감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그건 아니다. 공감이라면 다 좋은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고정관념일 뿐이다. 어떤 공감은 분열과 혐오를 가져온다. 중요한 것은 공감 자체가 아니라 '어떤' 공감을 '어디까지' 적용하느냐다. 진화학자 장대익 가천대 석좌교수가 책 ‘공감의 반경’에서 펼친 흥미로운 주장이다.

한국 사회가 이념, 세대, 젠더 갈등으로 두 쪽 난 건 공감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공감을 너무 많이 해서 서로를 편 가르고" 있어서다. 공감은 마일리지처럼 한도가 있는 정신적 자원. 자신이 속한 혈연, 지연, 이념, 종교 집단에 공감할수록 다른 집단에 쓸 공감이 고갈된다. 장 교수는 말한다. “한국 사회는 공감을 깊게 하는 게 아니라 반경을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감의 반경ㆍ장대익 지음ㆍ바다출판사 발행ㆍ296쪽ㆍ1만6,500원

공감의 반경ㆍ장대익 지음ㆍ바다출판사 발행ㆍ296쪽ㆍ1만6,500원

공감에는 두 종류가 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 우영우가 눈물을 흘릴 때 같이 우는 건 ‘정서적 공감’이다. 자동적이고 즉각적으로 발생한다. 상대방 관점에서 이해하고 생각하는 또 다른 공감은 ‘인지적 공감’이다. 코로나19 팬더믹 시기 대구와 광주 시민들은 ‘달빛 동맹’(달구벌ㆍ대구, 빛고을ㆍ광주)을 맺고 의료 지원과 도시락을 주고받았다. 지역 감정을 뛰어넘은 의식적 노력이다.

말썽은 정서적 공감에서 발생한다. 미국 오클라호마대 연구팀이 11세 아이 22명을 두 팀으로 나눠 야구, 줄다리기, 보물찾기 등 경쟁을 시켰다. 아이들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자기 팀에 과잉 공감했고, 상대방 깃발을 찢고 불태우더니 급기야 패싸움을 벌였다. 정서적 공감은 '내 편'을 향해 좁고 깊게 작용해 우리끼리 뭉치게 하지만 타인에 눈멀게 한다. 호모 사피엔스 시절 ‘우리 패거리’를 잘 챙겨야 생존에 유리했기에 생겨난 본능이다.

전 세계가 연결된 지금까지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게 문제다. “우크라이나 여성은 강간해도 돼, 대신 콘돔이나 잘 써.” 러시아 군인의 아내가 남편에게 했다는 말이다. 광적인 애국심이 부른 폭력이다. 지잡대(지방 소재 대학), 전라디언(호남 폄하 발언), 깜둥이(흑인 비하 발언), 맘충(엄마+벌레)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들은 누구일까. 수도권 대학, 한국인, 남성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이들일 가능성이 크다.

저자가 강조하는 인지적 공감은 “다른 사람이 어떤 입장인지 상상하고, 그 고통을 이해하며, 결과적으로 사회 분열을 막는” 능력이다. ‘저것들은 인간도 아니야’라는 정서적 느낌과 ‘경쟁자지만 나와 같은 사람이야’라는 사고에서 비롯된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교육과 훈련은 인지적 공감의 토대다. ‘흑인의 삶을 상상해보라’는 주문을 받은 미국 대학생들은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한 그룹보다 흑인에 더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장 교수는 2016년 ‘울트라 소셜’이라는 책을 통해 인류 성공 비결을 ‘고도로 발달한 사회성’(초사회성)에서 찾았다. 강연에서 독자들은 물었다. “우리 사회에 갈등과 혐오가 얼마나 만연한데, 인류가 사회적인 종이라니요.” 이 책은 저자가 7년에 걸쳐 준비한 대답이다. 동지가 아니면 적으로 삼는 분위기, 혐오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을 보며 공감의 양면성을 연구했다.

우리 사회가 인지적 공감에 인색한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찾는 데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과도한 교육열, 성공 열망, 남성 중심주의 등 “한국 특유의 엄격한 규범”이 공감의 확대를 막는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획일화된 규범을 느슨하게 풀어주고, 어린 시절부터 공감력을 교육해야 한다. 그는 "인류는 공감의 범위를 넓히며 진화했기에" 우리 사회도 그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흥미로운 주장, 탄탄한 논리, 매끈한 글쓰기가 고루 돋보이는 책. 그런데 “굳이 공감하느라 힘 빼고 싶지 않다”는 이들도 있지 않을까. 장 교수가 통화에서 들려준 대답. “레버를 누르면 먹이가 나오는 실험을 쥐에게 했어요. 동료 쥐가 전기 충격을 받게 하면 쥐도 레버를 누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죠.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못하게 눈을 가리고 벽을 쌓는 이들이 있다면, 우리가 막아야 합니다.” 적폐 청산, 종북 협치 불가를 외치며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인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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