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워드슬럿'
책은 ‘비치(bitch)’라는 단어에서 시작한다. 한국 말로는 ‘나쁜 여성’ 정도로 순화해 보자. 언어학자들은 이 단어가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성기를 뜻하는 ‘바가스’에서 왔다고 추측한다. 라틴어에서는 ‘노출된 성기를 가진 동물’을 의미했다가, ‘암컷 동물’로 좁혀지고 어느 순간 ‘나쁜 여성’으로 안착한다. 역사 속에서 이따금 성 판매자로 불리거나 약골, 못된 여성, 불평하다는 동사로 쓰였다.
언어학자 어맨다 몬텔의 책 ‘워드슬럿’에 나온 대목이다. 여성에 대한 모욕적 단어는 대체로 가치중립적으로 쓰이다가 성적 함의를 담은 단어로 안착하는 경우가 많다. ‘마담(madam)’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 300년 전에는 격식을 갖춘 인사말이었는데, 어느 순간 ‘정부(情婦)’로 쓰였고 결국 성판매 여성으로 정착한다. 여성 단어 세계에서는 퍽 흔한 의미 격하 과정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조사한 결과, 여성 관련 은어의 90%가 부정적 뜻이었다. 반면 남성을 향한 은어 중에서는 46%에 그쳤다. 영어에 있는 여성을 향한 부정적 용어는 주로 성적 함의를 담고 있는데, 서구 사회에서 여성이 가진 지위를 보여준다. 상당수 비속어가 여성을 향하며, 성적으로 쓰이는 이유는 뭘까. 언어를 백인 남성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여자를 모욕하고 싶다면 그를 ‘걸레’라고 불러라. 남자를 모욕하고 싶다면 그를 ‘여자’라고 놀려라.” 남성들은 남성성을 잃는 것을 더 두려워하기에.
저자는 최신 사회언어학 연구를 바탕으로 각종 문헌과 기사, 정치인과 연예인, 개인의 은밀한 뒷담화까지 다양한 사례를 오가며 여성 차별 언어의 역사를 분석하고 고발한다. 페미니즘 책이지만 남ㆍ녀ㆍ노 누구나 낄낄 웃으며 통쾌함을 느낄 수 있는 책. 남성이라면 따끔한 대목도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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