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패션칼럼니스트 박소현 교수가 달콤한 아이스크림 같은 패션 트렌드 한 스쿱에 쌉쌀한 에스프레소 향의 브랜드 비하인드 스토리를 샷 추가한, 아포가토 같은 패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K팝처럼 유명한 한국의 럭셔리 브랜드나 제품은 왜 없을까?"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다. 다소 모순적인 이 말은 정확히 3가지로 나눠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브랜드 출생국은 해외일지언정 현재 럭셔리 브랜드의 모회사가 한국인 상황이다. 세계적인 회계 컨설팅 그룹인 딜로이트는 'Global Powers of Luxury Goods 2021 (Breakthrough luxury)' 리포트를 발행했다. 이 리포트에는 2020년 회계연도 상위 100대의 글로벌 파워 럭셔리 기업의 순위도 함께 발표한다. 여기에 한국이 모회사인 MCM 그룹은 67위로 명명됐다. 1976년 독일 뮌헨에서 생겨난 MCM(Modern Creation München)은 2005년 한국의 성주그룹이 인수해 지금에 이르렀다. 안팎으로 여러 말들이 있지만 명확한 건 하나다. 17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럭셔리 브랜드를 경영하는 한국 기업이라는 점이다.
둘째, 럭셔리 브랜드 이름과는 별개로 진짜 제품 자체는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경우이다. '시몬느(Simone)'라는 ODM(Original Design Manufacturing·제조업자개발생산) 방식의 핸드백 제조 기업이 있다. ODM은 단순 생산이 아니라 고객사가 원하는 기술 및 제품을 자체 개발하여 납품하는 고부가가치 생산 및 제조 방식이다. 시몬느의 고객사로는 럭셔리 브랜드로 익히 알려진 마크제이콥스(Marc Jacobs),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 코치(COACH), 토리버치(Tory Burch) 등이 있다. 럭셔리 핸드백은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만 만들어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이는 한국의 핸드백 제품 및 디자인 기술력이 럭셔리 브랜드들에게 매력도가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셋째,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인프라와 노하우가 구성되어 있을 때이다. 안경산업이 그렇다. 한국의 안경산업은 해방 이후 대구를 중심으로 생겨났고 지금도 한국에서 수출되는 안경테의 80% 정도는 대구에서 생산된다. 앞서 소개한 핸드백과는 반대로 한국의 안경산업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으로 성장하여 1980년대에는 세계 2위의 안경테 수출국이었다. 그러나 어느 산업 분야가 비슷하겠지만, 2000년대 전후로 중국이 OEM 분야에서 급부상하면서 현재 한국은 전 세계 안경테 수출국 8위 정도라고 한다.
럭셔리의 전 분야는 아니지만, 특정 제품군에 따라 경영 능력, 디자인 생산 능력, 기술과 인프라까지 한국은 일부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진짜 한국에서 나고 자라 글로벌 성공을 할 럭셔리 브랜드는 어떻게 해야 생겨날까? 향수 브랜드 르 라보(Le Labo)처럼 딱 맞는 브랜딩 비율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르 라보는 ①뛰어난 두 명의 조향사가 ②프랑스 향수 원료의 산지로 유명한 그라스의 항수 원료를 가지고 ③합리적이고 트랜디한 뉴욕으로 가서 ④마치 연구실(Labo)에서 실험하듯 향을 조합해 내놓으며 유명해진 브랜드다. 즉, ①노하우 보유자 ②최고의 원부자재 ③최적의 장소 ➃차별화될 만한 브랜드 프레젠테이션이 필요하단 말이다. 현재로서 한국에 아직 없는 것은 ➃번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➃번은 어렵지만 여러 사례를 학습해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병아리는 홀로 알을 쪼아서 깨고 나오는 것보다, 밖에서 어미 닭이 병아리가 쫀 부분을 함께 쪼아주면 훨씬 쉽게 부화할 수 있다. 이를 줄탁동시(啐啄同時)라고 한다. 모든 창조적인 것은 내적 역량도 중요하지만, 외적 환경도 중요하다. 한국이 단순히 럭셔리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학습하다 보면 머지않아 한국산 럭셔리 브랜드 차별화의 줄탁동시가 일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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