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6명 나란히 서면 꽉 차는 좁은 골목
경사각도 5.7도로 대관령 넘을 때와 비슷
미는 압력에 넘어지면 앞사람 속수무책
뒤늦은 구조... 제때 대응 놓쳐 피해 키워
154명의 희생자를 낸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는 무질서와 사고에 취약한 지형 구조, 당국의 안이한 판단이 맞물린, 명백한 ‘인재(人災)’였다. 좁고 경사까지 있는 골목에 대규모 인파가 몰리면서 순식간에 생명을 위태롭게 할 환경이 만들어졌고, 뒤늦게 도착한 구급인력이 접근할 수 있는 틈새조차 없어 구조 생명줄인 ‘골든타임’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좁고, 비탈지고, 수천 인파... '압사' 환경 순식간
무엇보다 대형 인명 피해를 유발한 가장 큰 원인으로는 폐쇄적 지형 구조가 꼽힌다. 이태원의 T자형 골목은 길이 40m, 폭 3.2m로, 성인 6명이 나란히 서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정도다. 골목 중간에서 빠져나갈 만한 통로는 해밀톤호텔에 연결된 좁은 후문과 반대편 음식점, 편의점, 건물 출입구 등 3, 4개가 전부다.
하지만 호텔 쪽은 높고 단단한 벽으로 가로막혔고, 반대편엔 건물 4채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도로를 만나기 전까지 대피할 수 있는 샛길은 전무했다. 더구나 골목길 경사각도가 대관령을 넘어가는 길과 비슷한 수준인 5.7도라 골목 입구에서 압력을 가해 누군가 쓰러지면 도미노처럼 속수무책으로 넘어질 수밖에 없다.
사고 골목은 축제 전에도 식당이 밀집한 세계음식거리에서 버스 정거장 및 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으로 이어져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지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3년 만에 ‘노 마스크’로 진행된 올해 핼러윈 축제에는 전날부터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이태원에 운집한 탓에 해당 골목 역시 시민 수천 명이 상시 이동할 만큼 북새통을 이뤘다. 구조당국 관계자는 30일 “발 디딜 틈 없는 공간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골목 중간에 위치한 시민 일부가 뒤에서 밀치는 힘을 견디다 못해 쓰러지면서 연쇄 압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과 교수도 “내리막길에서 압사사고가 발생하면 삽시간에 연달아 넘어지는 뒷사람의 체중에 더해 중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랫사람을 찍어 누르는 힘까지 합쳐지기 때문에 평지보다 훨씬 강한 하중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가령 사람이 5, 6겹으로 겹쳐질 경우 맨 밑에 깔린 사고자가 받는 압력은 최대 몇 톤에 달할 수 있다고 한다.
구조 지연, 진입 난항... '골든타임' 사수 실패
당국은 느슨한 대응으로 신속 구조에 필수적인 공간 확보에도 실패했다. 사고 발생 당시 경찰은 왕복 4차로인 이태원로 차량 통제에 어려움을 겪어 이날 0시가 넘어서야 구급차가 지날 수 있는 1개 차로만 겨우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당국이 현장에 도착한 뒤에도 사고자를 찾으려는 지인들이 비명과 울음을 터뜨리며 골목 진입을 시도해 경찰과 소방당국 관계자들이 제지하느라 구조가 지체됐다.
결과적으로 구조 지연과 수백 명의 피해자가 뒤엉킨 현장 상황은 골든타임을 놓치게 했다. 염 교수는 “구조대원이 밑에 깔린 사람을 빼내려 하면 위에서 누르는 무게 때문에 나오지 않고, 위에 있는 사람부터 끌어내리려고 하면 실타래 같이 얽혀 있어 수습이 어려웠을 것”이라며 “사실상 구조 체계 작동이 불가했다”고 말했다.
압사사고의 직접적 사인은 질식사인데, 호흡정지 상태에서 심정지까지의 골든타임은 4분이다. 심정지 뒤 5분이 지나면 생존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애초에 경찰과 자치구의 오판으로 참사는 예견돼 있었다는 지적이 많다. 용산구는 앞서 27일 핼러윈데이 행사에 대비해 부구청장이 주재하는 ‘긴급대책회의’를 진행했으나, 대규모 인파에 대비한 통행제한 조치 등은 일체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도 이날 10만 명의 인파가 예상되는 데도, 고작 137명의 경력만 배치했다. 사고대응은커녕 교통 통제조차 역부족인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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