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10명 깔렸다" 이태원발 첫 신고… 하루 뒤 154명 '죽음의 골목'으로
알림

"10명 깔렸다" 이태원발 첫 신고… 하루 뒤 154명 '죽음의 골목'으로

입력
2022.10.31 04:30
수정
2022.10.31 13:47
2면
0 0

이태원 '구름' 인파에 구급대 현장 진입 지연
밤 11시쯤 돼서야 심폐소생술 등 구조 본격화
사상자 급증... "여친 찾아달라" 현장 곳곳 오열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이태원 가서 한잔하고 가자.”

29일 오후 9시, 서울 용산구 지하철역 6호선 녹사평역 인근에서 직장 인턴 동기들과 모임을 끝낸 조모(23)씨는 핼러윈 축제가 한창인 이태원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조씨가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9시 38분. 그곳에서 ‘힙(hip)’한 술집이 모여 있는 이태원동 ‘세계음식거리’로 가기 위해서는 폭 3m 남짓 비좁은 골목길을 지나쳐야 했다. 순간 조씨처럼 이태원역을 나와 음식거리로 올라가는 사람과, 반대로 이태원역쪽으로 내려오는 인파가 뒤섞이면서 길은 금세 아수라장이 됐다.

“죽을 것 같다”... 10시15분 신고 빗발쳐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인파에 휩쓸려 40m 가량의 골목길을 지나 음식거리에 올라선 조씨 일행은 그때부터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오후 10시쯤 “밀지 마세요”, “너무 아파요” 등 인파 속에서 고성과 비명이 오가기 시작했다. 조씨는 “키가 작은 여성들은 바닥에 발이 닿지 못한 채 공중에 둥둥 떠다닐 정도였다”고 말했다.

15분 후 첫 신고가 소방당국에 접수됐다. “압사해서 죽을 것 같다. 사람 10여 명이 깔려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술이나 물 같은 액체가 길거리 곳곳에 뿌려져 있어 내리막길은 상당히 미끄러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일부 시민이 균형을 잃고 넘어졌고, 이내 도미노처럼 내리막 방향으로 줄지어 있던 사람들이 깔리기 시작했다. 한 목격자는 “올라가려는 사람들과, 내려가려는 사람들 간의 팽팽했던 균형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고 회상했다.

도착 40분 지나서야 본격 구조

30일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해밀톤호텔 인근 골목을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30일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해밀톤호텔 인근 골목을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후 10시19분 용산소방서 구조대원들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신고 접수 4분 만이었다. 하지만 이태원역 1번 출구 일대 모인 ‘구름 인파’ 탓에 현장 진입은 불가능했다. ‘의식불명 환자 15명이 확인됐다’는 구조대원들의 보고는 21분 뒤 소방당국에 전해졌다. 그제야 당국은 관할 소방서 모두가 출동하는 ‘대응 1단계’를 발령했고, 인근에 임시 응급의료소를 설치해 부상자 치료를 시작했다.

구조 작업은 난항이었다. 도미노처럼 쓰러져 사람과 사람이 얽히고 얽힌 인파 속에서 아래에 깔린 피해자를 도저히 빼낼 수 없었다. 윗사람이 내리누르는 압력이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인파 정리가 끝난 오후 11시 마침내 ‘의식불명’ 환자들이 들것에 실려 이송되기 시작했다. 도착 40분 만에 실질적 구조 활동에 들어간 것이다.

모습을 드러낸 현장은 참혹했다. 소방관들이 도로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을 하나씩 맡아 사활을 다해 심폐소생술(CPR)을 했지만 환자가 너무 많아 역부족이었다. 심정지 호흡곤란 환자만 300명 이상 쏟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소방당국은 11시 13분 대응 2단계, 11시 50분에는 전국의 가용 소방력을 총동원하는 3단계를 발령했다. 구급차 142대를 비롯해 구조 인력과 장비가 대거 투입됐다. 시민들까지 하나 둘 가세해 의식을 잃은 사람들의 가슴을 압박하고 팔다리를 주무르는 등 멎은 숨을 돌아오게 하려 안간힘을 썼다. 현장에서는 “심폐소생술 할 줄 아시는 분”, “의사 없으신가요” 등의 요청이 빗발쳤다.

밤새 사망자 폭증... 154명 ‘참사’

새벽이 되자 가족이나 지인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한 시민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여자친구와 연락이 두절된 20대 남성 박모씨는 “여자친구가 오후 10시30분쯤 카카오톡으로 사진과 함께 ‘집에 어떻게 가지’라고 메시지를 보낸 후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현장을 통제하는 경찰과 소방대원을 향해 “들여보내 달라”며 소리 지르며 울부짖는 시민도 목격됐다. CPR로도 살리지 못한 사람들의 시신은 주변 건물로 옮겨졌다가 오전 2시부터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과 체육관 등에 임시 안치됐다.

사상자는 시민들이 곤히 잠든 시간 계속 불어났다. 오전 1시쯤 소방당국은 “심정지 상태 피해자는 총 21명”이라고 발표했지만, 불과 한 시간 뒤 사망 59명, 부상자 150명으로 규모는 크게 늘었다. 이후 2차 브리핑(120명ㆍ오전 2시58분)→3차(146명ㆍ오전 4시7분)→4차(149명ㆍ오전6시30분)→5차(151명ㆍ오전 10시10분)→6차(153명ㆍ오후 4시30분)→7차(154명ㆍ오후 9시)까지 희생자는 계속 증가했다. 피해자는 대부분 10~20대로 여성이 98명, 남성 56명으로 파악됐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그래픽=박구원 기자





박준석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