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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검열의 시작과 끝

입력
2022.11.0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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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헤이스 코드

마릴린 먼로 등이 주연한 1959년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는 크로스드레싱과 동성애 장면 등으로 헤이스 코드 승인을 받지 않고 흥행에 성공했다. 위키피디아

마릴린 먼로 등이 주연한 1959년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는 크로스드레싱과 동성애 장면 등으로 헤이스 코드 승인을 받지 않고 흥행에 성공했다. 위키피디아

영화 등급제가 국가 권력의 간섭을 모면하고자 미국영화협회(MPAA)가 도입한 고육책이었던 것처럼, 악명 높은 영화 검열 규정인 ‘헤이스 코드(Hays Code·1934~68년)’도 당초 취지는 영화 자율성을 지키는 거였다.

1910, 20년대의 무성 흑백영화의 일부 장면, 예컨대 키스신이나 범죄집단의 총격전 등이 영화라는 장르에 생경했던 종교계나 보수 언론계의 이른바 명망가들의 눈에 윤리와 풍속을 해칠 듯 보였다고 한다. 1915년 미 연방대법원도 영화는 예술이 아닌 산업이라며 수정헌법 1조의 ‘언론자유’의 자격을 부정했다. 1921년 희극배우 로스코 아버클이 주선한 파티에서 당시 만 26세 모델 겸 배우 버지니아 래피가 숨진 일까지 빚어졌다. 할리우드에 대한 윤리적 의구심이 커졌다. 종교·시민단체와 별개로 주정부가 앞다퉈 영화에 대한 사전 검열 법안을 발의했다.

그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업계의 방편이 자체 윤리규정 강화였다. 원년 규정은 크게 두 범주, 영화 속 금지 목록과 주의 목록이었다. 종교적 불경, 성직자 조롱, 타 인종 간 연애나 결혼, 국가나 민족 인종 등에 대한 의도적 비판 등이 금지됐고, 무기와 약물 사용, 범죄 미화, 남녀가 한 침대에 있는 장면, 과도한 키스신, 욕설 등이 주의 목록에 포함됐다.

하지만 강제성 없는 규정들을 우회하거나 무시하는 예들이 이어졌다. 협회는 종교계 인사 등이 가담한 위원회를 통해 사전 검열을 의무화하며 1934년 프로덕션 규정 집행관리국(PCA)을 설립했다. 사전 검열에 통과하지 못한 작품은 회원 영화사를 통해서는 상영할 수 없게 한 막강한 조치였다. 공화당 정치인으로 연방우정국장을 지낸 뒤 미국 영화 제작·배급사 회장(1922~45 재임)이 된 윌 헤이스(Will H. Hays)가 그 작업을 주도했다.

‘헤이스 코드’ 역시 영화인들의 지속적인 도전과 1940년대 말 이후 본격적으로 수입된 프랑스 뉴웨이브 영화 등 유럽 영화와의 경쟁, 1960년대의 반문화 운동 영향으로 1968년 폐기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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