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과거 참사와 연결 짓게 돼
누군가에겐 세월호보다 고통 클 수도
"비난 말고 서로 살피는 분위기 만들어야"
토요일 밤 10시, 일주일 중 가장 즐겁고 들뜬 시간 서울 한복판에서 100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로 인해 자칫 현장 목격자는 물론 일반 국민까지 불특정 다수가 정신적 고통을 겪는 '이태원 블루'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특수한 장소에서 특정 환경에 놓인 이들이 겪어야 했던 과거 참사들과 달리 이태원 참사는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밀집해 모이는 익숙한 장소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불안과 공포가 더 심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태원 참사로 인한 국민들의 사회적 고통과 트라우마가 과거 세월호 참사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주변에서 서로를 돌보고 빠르게 치유받도록 돕는 '사회적 연대'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석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세월호는 바다 위의 선박이라는 특수한 공간, 즉 일상에서 맞닥뜨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발생한 참사였던 반면, 이번 이태원 참사는 사람들이 평소 다녔던 친숙한 장소에서 발생해 더 충격이 크게 다가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상생활 도중 부지불식간에 큰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걸 온 국민이 목도하면서 '나도 언제 이런 사고를 겪을지 모른다',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는 불안과 공포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상생활과 연결되거나 과거 참사가 연상되는 탓에 느닷없이 불안 증세가 찾아올 수 있다. 배승민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가장 즐겁고 활기찬 시간에 어린(젊은) 친구들을 떠나보냈다는 점이 세월호 참사와 비슷해 누군가에겐 데자뷔 현상처럼 다가올 수 있다"고 말했다.
"증상 악화 인지 못 할 수도… 관심과 배려 필요한 때"
전문가들은 많은 사람이 힘든 시기를 겪을 수 있는 만큼, 특정 감정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배승민 교수는 "사건·사고에 대한 충격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며 "본인이 가진 특성에 맞춰 (후유증이)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을 사회가 인정하고 자신만의 속도에 따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서로를 비난하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애도를 강요하거나 시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받을 경우 감정을 추스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권고문을 통해 "비난과 혐오 등 부정적 감정을 조장하고 사망자와 생존자에 대해 편견을 갖게 하는 건 삼가야 한다"며 "대중의 비난은 더욱 크고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게 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큰 충격을 받은 초기에는 주변에서 서로를 관찰해 상태가 악화하는 걸 막아야 한다. 현장에서 사고를 겪은 사람들은 친구를 구하지 못했다는 슬픔에 죄책감을 느끼거나, 현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우 인제대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금은 주변 사람들이 트라우마에 노출되지 않도록 관심을 두는 게 중요하다"며 "자신이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 주변에서 빠르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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