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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4시간 전부터 다급한 '압사' 신고만 6건... '경찰'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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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4시간 전부터 다급한 '압사' 신고만 6건... '경찰'은 없었다

입력
2022.11.02 01:00
수정
2022.11.02 09:4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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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11차례 112신고 공개... '압사' 언급 9번
참사 전까지 하루 112건 이태원파출소 처리
경찰관계자 "신고 불편 수준... 평소처럼 말해"

이상민(가운데) 행정안전부 장관이 1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이날 윤희근(왼쪽) 경찰청장은 경찰청에서, 오세훈 서울시장도 시청 브리핑실에서 사과했다. 연합뉴스

이상민(가운데) 행정안전부 장관이 1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이날 윤희근(왼쪽) 경찰청장은 경찰청에서, 오세훈 서울시장도 시청 브리핑실에서 사과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 3시간 40분 전부터 적극적 도움을 요청하는 신고가 쇄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고의 직접 원인인 ‘압사’를 명시적으로 못 박은 112신고만 최소 6건 접수됐다. 하지만 경찰은 소방당국의 공조 요청 전까지 11건의 신고 중 제대로 된 대응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시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할 경찰이 명백히 직무를 포기한 것이다. 경찰 책임론이 거세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11건 신고 중 '압사' 언급만 9회

경찰청은 1일 이태원 참사 당일 압사 사고와 관련해 112에 접수된 신고 녹취록 11건의 요약본을 공개했다. 29일 오후 6시 34분부터 오후 10시 11분까지 신고 내역이다. 11건 신고 내용에서 압사라는 표현이 등장한 사례는 9번이었다.

최초 신고자는 “좁은 골목인데, 클럽에 줄 서 있는 인파와 이태원역에서 올라오는 사람들, 골목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엉켜 잘못하다가 압사당할 것 같다”며 진입로에서 인원 통제 등 조치를 해주셔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첫 신고자 A(51)씨는 이날 한국일보 통화에서 “너무 위험하니까 1번 출구를 통제해 달라고 분명하게 요청했다”고 증언했다. 사고 발생 골목과 인접한 해밀톤호텔 뒤편에서 오래 전부터 상가를 운영해온 그는 주변 지리에 밝아 이날 사태의 심각성을 빠르게 감지했다고 한다.

참사 당일 오후 6시쯤 일터를 나선 A씨는 “오후 5시 20분부터 가게 앞으로 사람들이 급격하게 불어나 가게를 맡기고 귀가를 서둘렀다”며 “이태원역까지 가는 데 평소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미 해질녘에 위험 신호를 느꼈다는 것이다. 그는 또 “112신고에서 ‘주변에 경찰관이 있는데 인원 통제 없이 노점상 단속만 한다’는 내용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파출소 옆에서 신고해도 출동 안해

이태원 참사 112 신고 녹취록 주요내용. 그래픽=김대훈 기자

이태원 참사 112 신고 녹취록 주요내용. 그래픽=김대훈 기자

경찰은 1시간 17분이 지난 오후 8시 11분 첫 신고를 종결했다. 하지만 이 때부터 구체적 피해상황을 알리는 신고가 잇따라 접수됐다. 오후 8시 9분 신고자는 해밀톤호텔 맞은편인 이태원파출소 앞에서 “사람들이 너무 많아 넘어지고 다치고 난리다. 정리를 해달라”고 경찰에 도움을 청했다. 오후 8시 33분 신고자도 “사람들이 지금 길바닥에 쓰러지고 사고가 날 것 같다”고 긴박한 상황을 알렸다. 그러나 경찰은 22분 뒤 현장 확인도 없이 접수를 마무리했다.

경찰의 미온적 대응 탓에 오후 9시를 넘기자 112신고 내용은 더 급박해졌다. 오후 9시 신고자는 “인파가 너무 많아 대형사고가 나기 일보 직전”이라며 경찰력 동원을 요청했다. 2분 뒤 신고자 역시 “길을 어떻게 해달라. 진짜 사람이 죽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후 112 신고자들은 압사를 빠짐 없이 입에 올렸다. 오후 9시 7분 신고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압사당할 위기에 있다”고 했다. 3분 뒤엔 “안 쪽에 애들이 압사를 당하고 있다. 핼러윈 축제장, 핼러윈 축제장, 이태원역”이라는 다급한 소리가 112신고에 담겼다. 경찰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그저 “상호명을 불러 달라”고 반응했다. 오후 10시 신고자도 “골목에서 내려오면서 막 밀고 압사를 당할 것 같다. 통제를 해달라”고 호소했다.

참사가 임박하자 비명 소리까지 녹취에 담겼다. 오후 10시 11분 신고자는 “여기 압사될 것 같다. 다들 난리가 났다”고 했고, 곧 이어 비명이 새어 나왔다. 4분 뒤 오후 10시 15분 결국 해밀톤호텔 옆 골목길에서는 연쇄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이 출동을 결정한 것도 이 시간 소방당국의 공조 요청을 받고나서였다.

현장 출동 고작 4건... 경찰 "불편 신고 정도"

11건의 압사 위험 신고 중 경찰의 현장 출동은 고작 4번이었다. 심지어 참사가 임박한 오후 9시 7분 신고 후 경찰은 출동 자체를 하지 않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신고 대처는 현장에 출동해 조치하거나, 신고자에게 경찰이 있다는 사실을 안내한 후 종결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좁은 지역에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모인 상황에서 파출소 인력만으로 대응은 애초에 역부족이었다. 실제 사고 당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 15분까지 이태원파출소는 122건의 신고 접수를 처리했다. 압사 위험 신고(11건)을 빼고도 교통 불편 49건, 위험 방지 요청 18건, 시비 7건, 성폭력 3건, 소음 3건, 분실습득과 무전취식 등 소란 40건 등이 접수됐다.

신고 녹취록을 공개했지만 이날 하루 경찰의 상황 인식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황창선 경찰청 치안상황관리관은 오전 합동브리핑에서 참사 당일 오후 6시를 기점으로 신고가 접수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일반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불편 신고’ 정도였다”고 말했다. 오후 112신고 녹취록 공개 후 역시 “(신고자가) ‘죽을 것 같다’고 평상시 얘기하듯 했다”면서 긴급 상황으로 볼 여지가 적었다고 강조했다.

정민승 기자
박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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