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함께하는 직업] <7> 정유정 서울대공원 사육사
편집자주
동물을 위해 일하는 직업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수의사, 사육사, 훈련사 등은 동물 관련 쉽게 떠올리는 직업이지만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입니다. 실제 영화감독, 출판사 대표, 웹툰 작가 등 다른 직업을 갖고 동물을 위해 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동물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만나 동물 관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반려동물만 노즈워크(후각활동) 하나요? 물소∙뿔소도 다양한 활동으로 스트레스 풀어요."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큰뿔소와 아시아물소 방사장. "음매~" 하며 밥을 빨리 달라고 재촉하는 소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정유정(35) 서울대공원 사육사는 대나무로 만든 모빌 사이사이에 근대, 당근, 상추, 얼갈이배추 등 다양한 채소를 꼼꼼히 끼워 넣었다. 세제통을 재활용해 만든 먹이통에는 건사료를 넣어 매달았다. 소들이 보다 오래, 어렵게 먹도록 하기 위해서다. 방사장 한편에는 싸리비와 소방호스를 달았다. 소들이 뿔로 치며 갖고 놀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드디어 소들의 식사시간. 방사장 내 문이 열리자 큰뿔소 6마리, 아시아물소 4마리가 나와 사방에 숨겨진 먹이를 찾기 시작했다. 보다 적극적인 성격의 큰뿔소들은 싸리비와 소방호스에 뿔을 비벼댔다.
동물 관련된 직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물원 사육사의 역할도 변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동물을 관람객에게 더 잘 노출시키고 동물에게 쇼를 시키는 데 힘썼다면 지금은 동물복지에 신경을 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올해 14년 차인 정유정 사육사는 행동 풍부화(제한된 공간에 있는 동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와 긍정적 강화 훈련(사람이 원하는 행동을 좋은 경험을 통해 동물 스스로 할 수 있게끔 교육하는 방식)에 주력하고 있다. 정 사육사는 2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먹이를 매일 다른 곳에 숨겨 동물들이 방사장을 돌아다니며 먹이를 먹게 하고, 국내외 자료를 참고해 행동 풍부화 물품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어 "동물이 먹이를 찾고 노는 모습을 보이면 관람객도 신기해하고 전보다 관심을 갖고 동물을 오래 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사육사가 부지런한 만큼 동물행복도 높아져
-동물원 사육사라는 직업을 소개한다면.
"동물원 내 동물이 건강하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동물에게 필요한 먹이부터 건강, 환경, 행동까지 전반적인 것을 관리한다고 보면 된다. 일과를 설명하면 오전에는 동물들이 간밤에 잘 있었는지 점검한 후 청소를 하고 먹이를 준다. 오후에는 먹이를 주면서 동물이 무료하지 않도록 다양한 자극을 주기 위한 행동 풍부화나 긍정적 강화 훈련, 행동 모니터링을 한다."
-사육사가 된 계기는.
"어릴 때부터 사육사가 꿈이었다. 동물 관련 전공을 찾아 공주대 특수동물학과에 진학해 졸업 후 서울대공원에서 자원봉사, 기간제근로자로 근무하며 경력을 쌓았다. 사육사가 되면서 종보전 연구실에서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남생이 증식 복원 연구에 참여했다. 이후 기린사, 동물병원 수의보조, 조류팀, 하마사를 거쳐 2019년부터 대동물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현재 아프리카물소, 큰뿔소, 아시아물소, 흰코뿔소, 아메리카들소 등 5종 26마리를 돌보고 있다."
-담당 동물은 어떻게 정해지나.
"관람객들이 많이 찾는 사자, 코끼리, 호랑이를 선호하는 사육사도 있지만 사육사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동물이 따로 있다. 사육사의 선호도가 반영되기는 하지만 예전에는 5년마다 담당하는 동물이 바뀌었는데 최근에는 전문성을 고려해 한 동물을 오래 담당하는 게 추세다."
-사육사로 가장 힘든 점은.
"담당하는 동물이 아프거나 세상을 떠났을 때다. 매일 마주하던 동물을 보내는 순간에는 복잡한 감정이 든다. 내가 좀 더 잘했어야 하지 않나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남은 동물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마음을 다잡게도 된다. 사육사는 또 동물 특성을 미리 파악해 꾸준히 공부하고 사육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예컨대 조류는 외부 자극에 예민하고 잘 놀라는 특성이 있어 외상을 입기 쉽다. 양서파충류는 온도변화에 민감해 작은 온도차로도 아프기 쉬운데 치료가 쉽지 않다. 사육사가 부지런한 만큼 동물도 부지런해지고, 행복도도 올라간다."
동물을 돌보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서로 간 신뢰
-현재 적용 중인 행동 풍부화 내용을 소개해달라.
"행동 풍부화에는 환경 풍부화, 사회성 풍부화, 먹이 풍부화, 감각 풍부화, 인지 풍부화가 있다. 큰뿔소와 아시아물소는 순한 성격으로 같은 방사장 내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서로 자극이 되면서 사회성 풍부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 모니터링하던 중 소들이 넓은 방사장 중에서 한정된 공간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돼 먹이를 최대한 분산시켜 활동성을 높였다. 제한된 공간에서의 무료함은 정형행동(비정상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먹이를 좀 더 어렵게 먹도록 난이도도 높이고 놀 거리도 다양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긍정적 강화 훈련도 하고 있는데.
"올해 열두 살이 된 아프리카물소 '보스'는 공격성이 강하기로 유명해 검진이나 치료가 어려웠다. 2년 전부터 하루에 5~10분씩 딸깍 소리가 나는 '클리커'를 활용해 소리를 낸 다음 공격성을 보이지 않으면 먹이를 주는 훈련을 하고 있다. 이제는 클리커 소리를 긍정 신호로 인식하고 있다. 원하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기도 하고 주삿바늘을 찔러도 움직이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피부병이 생겨 보스가 밥을 먹는데 열중하는 동안 피부 부위 소독을 하고 농을 짜내고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사람과의 신뢰는 매우 중요하다."
-사육사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꾸준함, 관찰력, 인내심 그리고 유연한 사고다. 동물을 돌보는 일은 매일 꾸준히 해야 한다. 또 동물을 잘 관찰해야 어디가 아픈지, 뭐가 필요한지 알 수 있다. 동물은 사람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주면서까지 교육을 위한 교육을 해선 안 된다. 사육사들 사이에서도 가치관이 달라 트러블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때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기도 하고, 또 설득하기도 해야 한다. 전제는 동물의 삶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원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는데.
"동물원도 동물복지를 중요시하는 시대 흐름에 따라 더디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다. 동물복지에 시민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건 기쁘기도 하다. 동물원도 시민도 동물을 위한다는 점에서 목표는 같다고 본다. 앞으로 동물원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함께 고민해 나가면 좋겠다."
사육사가 되려면
동물 관련 전공을 하는 게 유리하다. 경력이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데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동물원이나 국립생태원 등에서 인턴으로 활동하며 경력을 쌓는 경우도 많다. 축산기사, 자연생태복원기사, 생물분류기사 등 관련 자격증을 따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실내동물원이나 체험동물원 경력은 인정하지 않는 편이다. 동물의 습성에 맞춰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보다 중요한 건 어떤 사육사가 되고 싶은지부터 생각해봐야 한다는 게 정유정 서울대공원 사육사의 조언이다. 그는 "예비 사육사라면 동물이나 환경 관련 이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국내외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움말: 정유정 서울대공원 사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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