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후 문화계 풍경
라디오에서 댄스곡이 사라졌다. 공연장에선 배우와 관객이 함께 춤을 추는 퍼포먼스가 자취를 감췄다. 서울 이태원 일대에서 벌어진 핼러윈 축제 참사로 달라진 문화계 풍경이다.
점심 식사 후 나른해진 청취자의 졸음을 쫓기 위해 흥겨운 곡이 가장 많이 울려퍼지던 정오~오후 4시 라디오에선 댄스곡이 뚝 끊겼다.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3일까지 이 시간대 KBS·MBC·SBS 지상파 3사에서 방송된 '이기광의 가요광장' '김신영의 정오의 희망곡' '최화정의 파워타임' 등 6개 음악 프로그램 선곡표를 확인한 결과, 댄스곡은 단 한 곡도 없었다.
대신 가장 많이 선곡된 곡은 '위로'(6번)였다. 권진아의 '위로'(2)를 비롯해 김범수와 양요섭, 소금, 하림(1)의 동명 곡이 잇달아 전파를 탔다. 헤이즈(KBS '헤이즈의 볼륨을 높여요' 오후 8시)는 같은 기간 권진아와 어반자카파 그리고 하림의 '위로'를 사흘 연속 번갈아 선곡했고, 김신영은 1일 권진아와 김범수의 '위로'를 두 번 틀었다. 아이유가 다시 부른 산울림의 '너의 의미'와 성시경이 불러 영화 '국화꽃 향기'에 실린 '희재'도 자주 소개됐다. 채 피지도 못하고 이태원 일대에서 스러진 청년들을 기억하고 유족을 위로하기 위한 노래들이었다.
들떴던 공연은 차분해졌다. 관객 참여형 공연인 창작가무극 '금란방'은 1일부터 공연 전 극장 내 DJ 부스 앞에서 배우와 관객들이 함께 춤을 추는 막간극을 없앴다. 서울예술단 관계자는 "극장 로비에서 배우들이 호박엿을 나눠 주는 퍼포먼스도 사고 후 중단했다"고 말했다. 5일까지 이어지는 국가애도기간에 드라마 제작진은 장례식 장면의 과한 연출을 삼가고 있다. 고인의 청을 들어주는 장례지도사 백동주(이혜리)가 주인공으로 장례식장을 주 배경으로 한 MBC 드라마 '일당백집사'는 2, 3일 결방했다. 제작진은 "드라마 소재 및 내용 흐름상 (이태원 참사) 유족 분들과 또 다른 국민들에게 아픔이 될 만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해 결방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KBS는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서 연기자들이 이태원 참사 전 귀신 분장을 하고 찍은 촬영 분량을 모두 폐기했고, 핼러윈 콘셉트로 촬영된 '슈퍼맨이 돌아왔다'(10월 28일)와 '홍김동전'(10월 23일) 다시 보기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태원 참사 유족을 위한 지원에 예술인들도 나섰다. '한류 스타' 이영애는 이태원 참사 유족을 돕기 위해 한국장애인재단에 지원금을 기부한 것으로 이날 확인됐다. 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이영애는 이태원 참사로 숨진 러시아 국적 고려인 A(25)씨의 아버지가 시신 운구비용(약 5,000달러)을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연을 듣고 재단에 "돕고 싶다"며 먼저 연락을 해왔다. 그는 이 재단에서 문화예술 분야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배우 이일화와 황보라, 방송인 홍석천과 브라운아이드걸스 멤버 미료, 팝페라 가수 임형주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와 이태원역 추모 공간을 직접 찾아 애도했다. 배우 정우성은 2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향한 비통한 마음을 담은 김의곤의 시 '미안하다, 용서하지 마라'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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