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88년생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와 93년생 곽민해 뉴웨이즈 매니저가 2030의 시선으로 한국정치, 한국사회를 이야기합니다.
또 하인리히 법칙, 대형참사 터졌지만
세월호 때보다 사회적 대응은 성숙
갈등 속에서도 안전사회 위해 노력해야
2015년 메르스사태 당시 알베르 카뮈가 1947년 발표한 소설 '페스트'가 자주 소환되었던 건 재난을 맞이하는 인류의 얼굴이 서로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진실을 외면하는 정부의 비겁함과 안이한 대응, 불투명한 정보 공개, 무지가 만든 선동과 혼란 등이 어우러져 작은 사고는 큰 재난이 된다는 교훈은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재난은 기승전결을 갖춘다. 대형참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하인리히의 법칙'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이다. 1920년대 미국 한 보험회사의 관리자였던 허버트 W. 하인리히는 약 7만5,000건의 산업재해를 분석한 결과, 한 건의 큰 재해가 발생하기 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29건의 작은 재해가 발생하고, 또 그 이전에 300건의 잠재적 징후들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1920년대 미국이든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든 '대형참사 이전에는 반드시 여러 징후가 발견된다'는 사실은 시대를 초월해 적용된다.
그런데 대형참사 이후 그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느냐 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정부는 책임회피에 급급하고, 언론사들은 속보 경쟁을 벌이다 오보를 낸다. 정치적 목적이나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과장된 분노를 표출하는 세력도 반드시 나타난다. 음모론을 제기하는 가짜 전문가부터 없는 일을 만들어 확산시키는 네티즌까지, 미디어에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비극을 한철 장사의 수단으로 삼는 이들로 넘쳐난다. 그렇게 온 사회가 한바탕 하고 나면 무차별적 분노를 표출한 사람이야 속 시원하겠지만 그렇다고 희생자와 유가족의 상처가 치유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누적된 사회적 피로가 유가족을 향하며 더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재발 방지 대책 같은 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비극적인 사건과 그에 따른 갈등으로 사회가 홍역을 치르고도 참사는 반복된다. 그때마다 "바뀐 게 없다"는 비판이 흘러나온다. 보편적 경향들이 그렇다.
다행스럽게도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각종 재난을 경험하면서 우리 사회는 대단히 성숙해진 것처럼 보인다. 지난 29일 밤 이태원에서 핼러윈 참사 소식이 전해진 직후, 트위터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희생자들이 그대로 노출된 현장 사진이 거듭 올라오자 시민들은 이를 내릴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리고 이번 참사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따지려 하면서도 무분별한 책임론은 경계하고 있다.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비롯해 온갖 잡음을 일으키며 언론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경험 때문인지, 한국기자협회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해 언론은 재난보도준칙을 준수해 2차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많은 언론사가 사건 초기 올렸던 현장 사진을 대거 삭제하거나 모자이크 처리했다.
참사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른다. 비록 하인리히는 참사 이전에 많은 징조가 나타난다고 했지만, 그건 사후적 분석일 뿐이다. 아무리 안전에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예기치 못한 사태는 발생할 수 있다. 세상 모든 경우의 수를 전부 고려하고 대비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입장과 생각이 다른 만큼 정치적 갈등도 없을 수는 없다. 야당 정치인들이 정부를 탓하든, 여당 정치인들이 불가항력적 상황을 탓하든 그건 그들의 자유다. 다만 갈등이 빚어지는 와중에도 이번 참사의 교훈을 되새기고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해야 한다.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늘 불필요한 비용으로 여겨졌던 안전 비용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숱한 문제 제기와 논쟁 이후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면, 그땐 정말로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번 핼러윈 참사를 어떻게 극복해나가느냐가 우리 사회의 격과 품위를 결정할 거라 믿는다. 안타까운 사건으로 희생된 많은 분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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